제8화, 법가의 주장
앞에서 말한 병가나 종횡가 다음에 조금 조리를 갖춘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법가라는 무리이다. 이 법가 중에는 한비자(韓非子)라든지 그에 앞선 제나라 관중(管仲)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의 주장은 법률로써 천하를 다스리려는 것이어서, 바른 주장이다. 오늘의 세계는 모두 법치국가이니까.
그런데 이 법가에는 최초에 상앙(商鞅)이라는 매우 법률을 고집하는 사나이가 나왔다. 이 사람은 법의 개념을 일반 사람에게 심으려는 생각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특히 당시 사람들은 아직 법을 신용하지 않으므로, 먼저 이것을 신용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어느 날 “여기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만일 이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금 일만 량을 준다.”는 포고를 낸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무도 이것을 신용하지 않았다. 저런 나무 한 그루를 옮긴 것으로 일만 량의 금을 줄 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 있어서 그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재빨리 이 사람에게 일만 량을 주었다. 이에 백성들은 처음으로 법을 사랑해야 하겠다는 것을 알았다 한다.
어느 날 다시 명령을 내렸다. “불 탄 재를 도로에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목을 벤다.”는 포고를 냈다. 이것도 재를 떨어뜨렸다고 해서 목을 벨 이는 없을 것이라 해서, 그것을 경시하여 어떤 사람이 재를 떨어뜨렸더니, 상앙은 재빨리 그 사람의 목을 베었다. 이에 사람들은 처음으로 법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신상필벌의 결과를 얻어 이것으로써 천하를 다스리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법가 중에는 앞에 말한 상앙 이외에 신불해(申不害)라든지 신자(愼子)라든지 하는 무리가 각각의 설을 세웠다. 이들의 여러 설을 대성시킨 사람이 한비자(韓非子)이다.
한비자는 두 자루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두 자루는 임금의 보배이다. 이것을 잃으면 나라는 다스려지지 않는다. 그러면 두 자루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형벌과 은덕이다. 이 두 개를 가지고 있는 한 임금은 세상을 다스릴 수가 있지만 혹시 이것을 잃으면 나라는 다스려지지 아니한다.
옛날 어느 곳에 마음씨 나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한테 말했다. “형벌은 백성이 싫어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내가 하겠습니다. 은덕은 백성들이 바라는 것이므로 그것은 왕께서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미움을 받는 것은 나뿐이고, 칭찬을 받는 것은 왕입니다.” 하고 말솜씨 좋게 교묘하게 권했다. 왕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여 형벌 일체는 그 사나이에게 맡기고, 은덕만을 베풀었다. 그런데 백성들 쪽에서는 이렇다면 왕은 조금도 무섭지 않으니까 하여 자연히 그 사나이의 명령만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한비자는 또 임금은 결코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밖으로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초나라 장왕(莊王)은 허리가 가는 미인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평판이 되자, 젊은 여자들은 모두 허리를 가늘게 하기 위하여 밥도 먹지 아니하여 굶어 죽는 사람마저 나왔다. 요컨대 임금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밖으로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한다는 것을 얼굴에 나타내면 반드시 거기에는 거짓이 생긴다. 그러므로 임금은 생각하는바 일체를 가슴속에 감추어두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개 이러한 것이 법가의 주장인데, 어떻든 법이라는 것은 일이 끝난 후의 뒤처리이다. 선을 상주고, 악을 벌한다고 하지만 상을 주기 전에 선이 있고, 벌하기 전에 악이 있으므로 상벌이 행해지기 전에 선악의 행위가 있는 것이므로 결국 근본적으로는 천하를 다스리지는 못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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