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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마야문명 이야기 12

종말사상과 마야문명의 붕괴(2/2)

종말사상과 마야문명의 붕괴(2/2)  2, 는 왜 일어났는가? 이라고 해서 생각나는 것은 마야 문명의 붕괴>라 불리는 일이다. 자주 마야문명은 돌연 붕괴하여 장글에 묻혔다.>고 말하는데 어디까지나 고전기마야 저지남부에서 도시가 버려졌다.>이고 마야 저지북부에서는 아마도 번영하고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9세기부터 100년 정도의 긴 시간을 걸쳐서 도시가 차차 버려진 것이고 한꺼번에 마야문명이 붕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찌해서 마야저지 남부의 도시는 버려진 것일까.고전기 마야문명의 붕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도 연구자에 의하여 많은 학설이 나왔다. 도시 내부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생각. 외부에서 침입당했다는 생각, 그래서 교역 네트워크가 변하였다는 생각도 있다. 또 도시국가로서의 항쟁에 의..

종말사상과 마야문명의 붕괴(1/2)

종말사상과 마야문명의 붕괴(1/2) 세상에 화제가 된 세계멸망의 닐>인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것도 그렇고 원래 마야달력은 세계의 종말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어째서 화제가 되었는가. 1, 마야 장기력이란? 소위 종말사상과 마야달력이 결합된 것은 마야인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달력 속에 장기력이라는 달력의 어느 잘리는 날>이 2012년 12월 21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마야장기력이란 어떤 달력인가. 어쩌면 187만2000일로 본자리로 돌아온다는 문자 그대로 긴 기간의 달력이다. 마야인은 수를 표기할 때 20진법을 썼다. 우리들이 쓰고 있는 것은 10진법, 1, 2, 3, 4, 5, 6, 7, 8. 9 다음에 2개의 수가 되므로 10진법이라 한다.마야인은 20진법을 쓰고 있었으므로 1..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 (5/5)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 (5/5)  이마나 후두부를 평탄하게 한 귀족들 마야인에게는 어릴 때에 이마를 평탄하게 하는 두개(頭蓋)변형>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2장의 판자로 앞과 뒤에서 머리를 싸서 끈으로 묶고 머리의 모양을 변형시켰다고 생각된다. 단지 이 풍습은 모든 마야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귀족이나 스스로 높은 신분을 일반인과 명확히 구별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어째서 평탄한 이마나 직선상의 후두부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추측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당시의 마야인이 그 형상을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일까. 치아변공>에 대해서도 두개변형>에 대해서도 남녀 비는 유적에 따라 다소 차는 있어도 전채로 본다면 그 차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 마야인의 의례는 어떤 때에..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 (4/5)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 (4/5) 4, 신체를 변형시키는 풍습이 성했다.  의례만이 아니라 마야인에게는 흥미를 끌 만한 풍습이 있다. 아이 때부터 눈썹과 눈썹 사이에 수지 덩어리를 달아매어 그것을 양 눈으로 보는 훈련을 했다고 마야인을 정복한 스페인이 보고하고 있다. 토기나 석비에 나오는 왕족이나 귀족의 눈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시가 확실히 그려진 것도 있다. 기니치(Kinich >라는 태양신이 사시로 표현되는 일도 있고 사시가 신성해서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이에 쐐기를 박는다든지 보석류등을 끼어넣는다든지 하는 치아변공(齒牙變工)>이라는 풍습도 있다. 이를 깎는 풍습은 일본의 조몬시대에 행해졋던 우상연치(又狀硏齒)>에도 보이지만 마야문명의 경우 일본보다 넓은 지역..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 (2/5)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 (2/5)  2, 피를 중시한 여러 가지 의례 그런데 마야문명에는 독특한 의례나 풍습이 있는데 조금 기이한 것은 피를 중시했다는 것이다. 왕은 스스로의 신체를 가오리의 꼬리나 흑요석의 칼 등으로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림으로써 신성한 입장을 지키려 했다.  나프토니츠동굴의 벽화에는 남성기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린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야슈치란(Yaxchilan)동굴 유적의 석비에는 여성은 혀에 비슷하게 구멍을 내고 거기에 끈을 통하게 한 것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피의 의례를 통하여 왕만이 아니라 에리트층의 귀족도 신들에 대하여 피를 바치고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생각된다. 신전 앞에 있는 광장에서는 의례가 행해졌다고 생각된다. 왕이 녹색의 선명한 게츠알(스페인..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1/5)

의례와 풍습으로 본 마야문명의 정신세계(1/5)   마야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각적으로 알기 쉬운 피라미드나 석비, 장식품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관이나 사상을 반영한 의례나 풍습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관은 어떤 민족에게도 있지만 마야문명의 경우는 어떤 독특한 세계관, 그리고 그에 관련되는 의례나 풍습이 있었는가?  마야문명의 세계관이란 마야인에게도 어떤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어떤 풍으로 성립되고 있는지 하는 세계관이 존재한다. 마야의 경우에도 신과 주요한 식물(食物)이 세계의 창조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  마야고지의 시림들이 남겼다고 말하는 포폴 브흐(Popol Vuh/Popol Wuj)=현재 과테마라고지에 사는 키츄족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신화 및 역사를 적은 문서)>에 따르면 신에..

마야 피라미드의 진실(3/3)

마야 피라미드의 진실(3/3)  3, 피라미드에 새겨진 마야의 달력 마야의 달력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현재 우리들이 쓰고 있는 달력과 비슷한 달력은 농경에 쓰인. 일(하아브)력(haab)=마야문명에서 365일을 일주기로 하는 달력)>이다. 치첸이트사(스페인어 ; Chichén Itzá)의 쿠쿨칸(Kukulcan)의 신전에는 91단의 계단이 사방으로 만들어졌다. 각각 발이라 하면 91×4단=364단이 된다. 그래서 제일 위에 일단 높은 기초를 세우고 거기에 방이 만들어졌다. 곧 전부를 합치면 365단이 된다. 이것은 1년의 일수와 같은 숫자이다. 또 피라미드의 계단의 양 측면에는 각각 26개씩 도랑(/窪)이 만들어졌다. 26은 마야달력의 일(촐긴/Tzolk'in)력>을, 26의 배인 52는 일력>과 ..

마야 피라미드의 진실(2/3)

마야 피라미드의 진실(2/3)  2, 왕을 매장하고 신들과 교신한다. 고대 마야인은 세계가 천계, 지상계, 지하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하계는 저세상>이라 하여 취해져서 9층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라는 숫자는 그들로서는 지하=죽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티칼의 1호 신전을 비롯하여 파렝게의 비문의 신전이나 치첸이츠아의 구구르칸(뱀의 신)의 신전도 9층으로 된 피라미드이다. 그래서 이들 피라미드에서는 왕묘가 발견되고 있다. 이 사실은 왕의 죽음을 저세상>을 의미하는 9층의 피라미드와 겹쳐있음을 나타내고 있다.티칼유적의 1호 신전. 마야문명에서는 저세상>이 9층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믿고 있었고 그 상징으로서 9층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한편 피라미드는 산을 본받은 것으로 인공..

마야 피라미드의 진실(1/3)

마야 피라미드의 진실(1/3)  마야문명에 대하여 말할 때에 피라미드상의 건조물은 뺄 수 없다. 그러나 피라미드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일 것이다.이집트에서는 왕묘>? 재생공간>?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오랫동안 왕묘>라 하였었다. 이 설은 고대그리스의 헤로도도스가 지은 『역사』가 근본이 되고 있는데 그의 생각은 조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전문에 지나지 않다. 단지 저만큼이나 큰 피라미드이므로 파라오가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납득이 된다. 그런데 근년 왕묘가 아니다.>라는 설도 주창하게 되었다. 피라미드의 속에서 발견되는 석관이 작다는 것, 파라오의 신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한 사람의 파라오가 복수의 피라미드를 만든 예가 있다는 것 등이 ..

알듯하면서 잘 모르는 마야문명 이야기(3/3)

알듯하면서 잘 모르는 마야문명 이야기(3/3)  3, 다양한 자연환경이 낳은 다양한 문명 마야문명이라고 하면 정글에 묻힌 피라미드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마야문명이 성립한 환경은 매우 다양하다. 확실히 저지남부는 열대우림이 정글로 유명한 많은 유적은 이 지역에 위치한다.  그러나 체첸이츠아 유적등이 있는 마야저지 북부는 열대우림의 정글이 아니라 낮은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환경이다. 게다가 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편 마야 고지는 침엽수림이 너리 퍼져 있어 서늘하게 비도 내리므로 살기가 좋은 기후이다. 곧 대하 유역의 평지에 성립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연환경이 마야문명을 낳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석기와 철기 어느 쪽이 고도의 수준인가 하고 말한다면 아마도 철기 쪽이 발전한 문명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