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어떠했나
장자가 태어나고 살았던 시대는 어떠한 시대였는지 주로 사상 면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장자가 맹자보다 조금 후의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은 대개 전국시대 중간쯤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전국시대의 중간쯤이란 사상계에 있어서 비상한 발전을 이룬 시대이다. 후대의 학자는 이 시대를 제자백가의 시대라 해서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꽃핀 시대라 일컬어지고 있다. 후세에 여러 가지 사상이 중국에서도 일어나고, 또 널리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들 모든 사상의 싹은 각각 이 시대에 싹튼 것이라고까지 말해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앞서서 천하를 통일한 것은 주(周)나라였다. 주나라는 처음에는 은(殷) 왕조를 받드는 도시국가의 하나였으나, 기원전 1100년경 주의 무왕(武王)은 마침내 은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로부터 약 800년 동안 주나라가 중국을 지배하였다. 이 주 왕조는 정복한 땅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봉건제도를 실시하였다. 왕과 제후 밑에는 경(卿), 대부(大夫), 사(士)로 불리는 귀족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지배층을 이루었다. 그런데 춘추시대에는 존왕(尊王)을 대의명분으로 하는 봉건의 유풍이 잔존하여 맹주, 즉 패자(覇者)가 제후를 이끌고 왕실을 받들었으나, 서기전 5세기 무렵인 전국시대로 들어서자 제후들은 완전히 독립 국가가 되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병합하여 실질적으로 봉건제도는 붕괴하기 시작하고 점점 왕실 권력이 쇠해져서 옛날의 모습을 지탱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의 통일적 권위가 쇠해지면 재빨리 그 뒤에 새로운 사상이 일어나는 것이 상례이다. 특히 왕권과 같은 것은 가장 큰 권력이므로, 그것이 붕괴되었다고 하면, 여기에 자유사상이 발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군웅이 할거하여 전란이 끊임없이 계속 되었으나 제후들의 소망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후들은 하나같이 부국강병을 실현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다. 선비를 양성하려는 기풍이 성해짐에 따라 여러 선비들의 대열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들은 책을 써서 학설을 세우거나 이 학설을 각 임금 또는 제후에게 유세하고 제자에게 가르쳐 사상과 학문의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여러 학파의 이론가들이 춘추전국시대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학파로는 병가(兵家),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종횡가(縱橫家), 음양가(陰陽家), 명가(名家)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힘에 의한 정치를 물리치고, 도덕에 의한 정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가 이후 중국 사상과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주류가 되었다. 이에 반하여 유가의 도덕 예의의 정치를 거부하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것이 도가이다.
이제 병가와 법가와 종횡가 묵가 등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병가의 사상 (손자 용간)
2. 종횡가의 사상(한비자 세난)
1). 오랑캐를 쳐야 한다(한비자 세난)
2). 아들을 지혜롭다 하고, 이웃 아저씨를 의심했다 (한비자 세난)
3). 먹지 않고 남은 복숭아를 먹이다(한비가 세난)
3. 법가의 주장
4. 겸애설과 자리설
'도가의 고전 > 장자 이야기 백 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화, 종횡가의 사상(한비자 세난) (0) | 2009.07.12 |
---|---|
제6화, 병가의 사상(손자 용간) (0) | 2009.07.11 |
제4화 장자와 맹자 (0) | 2009.07.08 |
제3화 장자는 누구인가 (0) | 2009.07.07 |
제2화 선배인 노자와 공격 대상인 공자 (사기 노장신한열전 (0) | 2009.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