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겸애설과 자리설
그밖에 묵자(墨子)의 겸애설(兼愛說), 양자(楊子)의 자리설(自利說) 등도 성행했다. 겸애설에 의하면 세상에 다툼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랑 할 줄은 알지만, 남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비는 스스로를 사랑할 줄은 알아도 자식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부자간의 다툼이 생긴다. 형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은 알아도 동생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형제간의 다툼이 생긴다. 부부의 다툼이나 군신간의 다툼이나 붕우 동료 간의 다툼도 모두 이런 까닭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 그렇게 하면 세상은 다스려진다고 주장해왔다.
또 그런가 하면 양자 등은 이와는 반대되는 설을 세우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알 수 없다. 묵자는 스스로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과연 그대로 기뻐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별 문제이다. 예를 들면 나는 술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 스스로를 사랑하듯이 너를 사랑해서 너에게 술을 준다고 해서 술을 받은 사람이 만일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런 조치에 괴로워할 것이 틀림이 없다. 또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는 주장도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 이외의 아무도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여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선택하는 길밖에 없다. 철저히 자리, 거기에 천하 만민의 만족을 얻으려 하는 것이 양주 등의 자리설의 입장이다. 그런데 자리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남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설명은 붙어있지 않다. 또 자신만이 형편이 좋다고 하는 그 자기 자신도 실은 시시각각 변화해 간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반드시 같지는 않다. 금년의 나와 내년의 나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어 가면, 자리를 꾀하고 자신의 형편이 좋아 만족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내일의 일도 생각하지 않고, 내년의 일도 생각하지 않는 찰나주의에 빠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런 찰나주의가 천하통일의 구실을 할 수 있을 턱이 없다. 결국 자리설도 성립하지 않았다.
장자가 살던 시대는 실로 이렇게 가지가지의 의견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장자는 이들의 사상과 싸워서 자기의 주장을 확실히 밝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이들 제자백가의 설중에서 당시 가장 유력하고, 천하 태반의 사상을 지배한 것이 공자의 설이었으므로 자기의 설을 주장하려는 장자로서는 먼저 공자를 그리고 공자가 존중하는 요순에 대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장자》중에는 성인을 비난하는 소리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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