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33화. 순임금은 꼽추와 같다(잡편 서무귀)

간천(澗泉) naganchun 2009. 8. 21. 16:54

제33화. 순임금은 꼽추와 같다(잡편 서무귀)

 

  서무귀편에서는 먼저 당시 사회에 횡행하는 세 종류의 허둥대는 인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는 난주자(暖姝者)란 것이 있고, 유수자(濡需者)란 것이 있고, 권루자(卷婁者)란 것이 있다. 난주자란 것은 한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면 곧 마음으로 받아들여 가만히 혼자서 기뻐하고 만족해버린다. 그래서 애초부터 도가 실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사람을 난주자라고 한다.”

 

 난주자란 아녀자처럼 순진하여 비굴하게 아첨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으로 일체 존재의 근원에 있는 궁극의 진리 곧 도의 실재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유수자라는 것은 돼지에 붙어사는 이가 그것이다. 돼지의 성긴 털 사이를 가리어 거기를 넓은 궁전이나 큰 동산으로 생각하고 발톱이 갈라지고, 꼬부라진 곳이나 젖통이나 다리 사이에 있으면서 거기를 편안한 방이나 편리한 처소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백정이 한 번 팔을 휘둘러 돼지를 죽여서 풀을 깔고 불을 지르면 저도 또한 돼지와 함께 타 죽는 것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은 그 환경과 함께 나아가고 환경과 함께 물러나는 것으로써 이런 사람을 유수자라 한다.”

  유수자란 잠간의 편안함에 빠져서 일상생활 속에 매몰된 사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한정된 좁은 세계를 모든 것이라 알고, 이 세상의 허무한 부귀영화에 안주하여 죽을 때까지도 천지의 지대함에 눈뜨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권루자(券婁者)란 것은 순임금과 같은 사람이다. 대개 양고기는 개미를 생각하지 않지만 개미는 양고기를 생각한다. 왜냐하면 양고기는 비리기 때문이다. 순에게는 인의라는 비린 행동이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즐겨 모여들었다. 그러므로 순은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겼지마는, 모두 백성이 모여 도읍을 이루었고, 등(鄧)이라는 고을에 있을 때에는 십여만의 민가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요임금은 순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 순을 동토(童土=불모지)의 땅으로 불러올리면서 ‘원컨대 와서 백성들에게 은택을 베푸시오.’라고 한 것이다. 순은 동토(불모지)의 땅으로 나아가 임금이 되었다. 그러나 나이 늙고 총명이 쇠해서 돌아가 쉴 수가 없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권루자인 것이다.”(잡편 서무귀)

 

  권루자란 꼽추처럼 비굴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순임금에게는 인의라는 비린내를 풍기므로 그 비린내를 맡아서 모이는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순임금은 인의로써 심신이 수고를 다하여 어진 정치를 하였으나, 노쇠해서도 안락한 고향으로 돌아가 쉴 수도 없었다. 곧 정사에 희생된 일생이었다. 비유하건대 순임금은 인의의 행동이라는 비린내를 풍김으로써 개미들이 모여드는 양고기가 되어서 일생을 꼽추처럼 비굴하게 살아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순임금은 무위자연의 도를 깨닫지 못하고 인의라는 규범의 희생이 되어 비굴하게 산 사람이었다고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