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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프란치스코의 미소

간천(澗泉) naganchun 2014. 8. 17. 17:57

프란치스코의 미소

 

 

 

나는 크리스챤이다. 개신교다. 어렸을 적부터 개신교였던 것 같다. 모태신앙은 아니고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 타의적으로 다니면서 그냥 개신교였다. 내가 신앙을 종교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크리스챤이다. 하지만 그 동안은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심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나의 무지함, 게으름, 교만함 등 여러가지지만 그 중의 하나가 성당이다.

 

성당이라는 매혹덩어리가 있었다. 우리 집 바로 옆에는 성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당의 종소리. 수녀님들의 모습. 어린 시절 처음 본 외국인. 그는 그 성당의 신부님이었다. 외국인, 특히 서양인을 직접 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본 서양인이었다. 신기하고 묘했다. 크리스마스에 성당에 가면 수녀님들이 과자도 주시고 그랬다. 그리고 미사포를 쓰고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모습, 카톨릭 성가 소리 등은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성당에 다녀볼 양으로 성당에 갔었다. 그런데 굉장히 까다로웠다. 교회보다 외워야 하고 배워야 하고 암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시험을 치러야 입교를 할 수 있었다. 정해진 기간 동안 공부를 습득해야 했다. 그리고 행위적인 부분도 다양하게 터득해야 했다, 본당에 들어가는 순간 성호를 긋는 다거나 손을 물에 담근다거나 무릎을 꿇는 다거나 성가를 부르는 절차라던가 굉장히 까다롭다. 사도신경같은 것을 외울라치면 교회에서 외웠던 것과 조금씩 달라서 헷갈렸다. 혼돈스러웠다.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가 하고 고민을 조금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교회에 나갔다. 익숙해서. 편해서. 까다롭게 괴롭히지 않아서였다. 종교행위에 노력을 기울이는 수고로움이 번거로워서였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험 보는 것만으로도 귀찮고 힘든데 성당에서까지 이것 저것 외워야 하니 힘들었다. 고난이었다.

 

우리 집에는 ‘나는 왜 크리스챤이 아닌가“라는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책의 제목이 말이다. 그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음에도 그 책 옆구리가 항상 나를 응시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책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생각했었다. 나는 왜 크리스챤인가? 하고. 지금 진짜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고 생각하는 매일이기도 하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보니 모든 것은 같다. 교회나 성당이나 모두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마음이니까 말이다. 속과 겉이 하나인 곱고 너그러운 고마운 미소를 항상 머금는 진실된 크리스챤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신앙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이번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서 그의 미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상무념의 모습 같기도 하고 고즈넉한 미소이기도 하고 환한 미소이기도 하고 무소유의 미소이기도 하고 따스하고 너그럽고 나를 무진장 믿어주는 미소 같기도 하다. 흠이 없고 깨끗한 어린 아이의 미소이기도 하고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우친 노인의 아름다운 미소이기도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이기도 하고 그렇다. 하물며 미륵의 미소 같기도 하다. 종교를 초월한 사랑의 미소 말이다.

 

꾸밈이 없어 보인다. 교황님의 미소처럼 맑고 고운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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