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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즉문즉설

간천(澗泉) naganchun 2015. 2. 15. 17:46

즉문즉설

 

 

1978년도 경, 일본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그때 중학생들 사이에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DJ를 아이돌처럼 따랐다. 물론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나 탤런트도 있었지만 그건 모두가 아는 흔한 대상이어서 별로 튀지 않았고. 라이오 디제이는 어느 특정층만 아는 세상이었다. 그 라디오를 한 밤 중에 듣고 다음날 아침에 학교에 와서는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해주는 아이를 에워싸고 부러워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는 청취 층에 팬이 생기고 그 팬들이 문화를 형성하고 주무르는 식과 같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얼굴을 잘 모르지만 목소리에 취해서 디제이의 특징으로 별명도 짓고 그 별명을 애칭으로 부르곤 했다. 그런 애칭을 모르는 아이나 그런 라디오 프로그램을 모르는 아이는 유행에서 뒤지는 아이였고, 아예 이야기에 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만 하는 아이이거나 아니면 일찍 잠을 자는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요즘 나는 미디어가 발전할 대로 발전한 요즘 세상이 어쩌면 그 삼사십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영상매체가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에 오히려 듣기에 집중하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화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의 동영상 사이트가 아니라 팟빵이라는 개별 방송국 이야기다.

인터넷에 팟빵이라고 치고 들어 가 보자.

그러면 수백 개의 팟캐스트들의 목록이 펼쳐진다. 그것은 바로 방송 프로그램의 편성표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진행자가 진행하는 것을 골라 듣게 되는 것이다. 물론 동영상도 지원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듣는다. 짧게는 몇 분에서 몇 십분, 몇 시간짜리까지. 주제는 시사에서 문화, 유머, 개그, 종교, 문학 등 너무도 다양하다.

 

그 중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라는 팟캐스트가 인기다. 법륜스님이 상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10여분정도의 아하!하는 대응을 해준다. 그 대응은 답이 아니다. 해답이 아니다. 그 말을 듣고 상담자는 자신이 선택을 하고 깨닫게 된다.

크리스챤인 나도 들으면 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인간사이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애증과 갈등과 고민과 번뇌와 망설임과 욕심등을 순간에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짧게 재미있으면서도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으로 전달한다.

 

즉석에서 묻고 즉석에서 말한다는 뜻이려나?

심심할 때, 답답할 때, 갑갑할 때, 어느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될 때, 내가 왜 이러는지 아리송할 때, 슬플 때, 미울 때, 직접 법륜 스님을 만나러 가지 못하니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즉문즉설을 들어가 보자. 상쾌해집니다.

가뭄에 단비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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