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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감추어진 격랑, 담담한 표정

간천(澗泉) naganchun 2015. 2. 2. 08:54

 

 

 

감추어진 격랑, 담담한 표정

 

 

 

 

사람은 기뻐할 때 슬퍼할 때 두려워할 때에 따라 감정이 변하고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이 얼굴에 나타난다. 자신이 당하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표정은 각자의 생활 속에서 새겨진 모자이크이다.

가냘픈 미소에 벌어진 입이 귀에 걸린 기쁜 표정,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창백한 얼굴의 성난 표정, 파랗게 질린 슬픈 표정, 입이 딱 벌어지고 함박꽃처럼 웃는 즐거운 표정 등등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표정을 한평생 모으면 하나의 현란한 모자이크 작품을 이룰 것이다.

생활 속에서 당하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레 지어지는 표정은 백인백색일 것이다.

그런데 어려운 환경에서 암울한 속에 슬픔과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항상 담담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다. 매우 이성적이라서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사리에 밝고 일에 대처할 때마다 신중하며 공평하여 낙심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배려하여 일을 잘 처리하여서 주위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다. 내가 부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저렇게도 항상 담담한 표정을 지닐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담담한 표정을 타고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이 그런 것이라면 슬플 때는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이 자연일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을 당하여도 슬픈 감정을 안으로 삭이고 있는지 겉으로는 슬픈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다. 수련이 깊은 수도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부럽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다.

어떤 일을 당하여도 너무나 담담하고 차분하기 때문에 걱정 같은 것은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깊은 고뇌를 겪었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표정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처신하는 것일 것이다. 원래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자제력이 없어서 표정이 변화가 격하고 따라서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리고 의지할 상대가 못된다.

자기 자신도 괴롭거나 슬픈 일이 있어서만이 낙심하는 사람을 격려할 수 있다. 철은 두드려야 더욱 강해진다. 마음도 괴롭거나 슬픈 일을 겪음으로써 강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한도를 넘기면 깨져버리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마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괴로움 속애서도 표정이 담담해질 수 있는가?

이전에 자신이 경험한 괴로움에 비하면 현상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 괴로움을 극복하고 마음의 암울함을 제어할 수 있다면 평상시의 마음도 제어할 수가 있다.

마음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 표정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두드러지게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괴로움이 얽힌 격랑이 되어 마음속 깊이 감추고 보니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지으려는 노력이 간신히 담담하게 나타나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항상 표정이 담담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일 것이다.

파스칼은 마음을 평화롭게 가져라. 그러면 그대의 표정도 평화롭고 자애로워질 것이다.”라고 하였고 심신의료 분야에서 세계적 리더인 디파크 초프라(Dr. Deepak Chopra)박사는 최근의 저서 <수퍼브레인(SUPER BRAIN)>에서 만성병은 의식이 만들어내고 있다. 분노나 원한이나 미움 등의 감정을 가지면 그것이 나쁜 유전자를 활발하게 해서 암이나 심장병의 원인이 되는 염증을 일으킨다. 한편 기쁨이나 사랑, 남의 성공을 기뻐하는 등의 감정을 가지면 좋은 유전자가 활발해져서 신체의 병은 걸리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육체적 연령이 젊어진다.”고도 하였다.

암울한 경험이나 고통을 극복하여 기쁨이나 사랑의 감정만을 가지려 노력한다면 긍정적으로 자기 마음을 제어할 수 있고 어둡고 괴로운 표정보다는 적어도 담담한 표정은 지닐 수가 있지 않겠는가. 과연 이런 사람은 누구일까. 수도자이거나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닐까.

전란과 폭동 속에 밀려드는 가난과 혈육을 잃는 가족과의 사별 등 고난과 암울한 나날을 외로이 보냈으련만 어머니에게서 희열에 찬 기쁨의 표정은 아니지만 암울한 표정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자존과 상대에 대한 배려와 마음속 심연에 괴로움을 묻어두고 자애로움만으로 스스로를 수련한 수도자였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훈련을 쌓아야 하리라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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