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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오이 가시에 손을 베이다

간천(澗泉) naganchun 2013. 7. 1. 07:54

 

오이 가시에 손을 베이다

 

 

순하디 순한 채소가 나는 오이라고 생각해왔다.

시금치는 뽀빠이가 즐겨 먹던 채소여서 강하다는 인상이 남아있고, 미나리는 거머리와 함께 동거하는 생각에 좀 드세다는 생각이 있고 향도 강하고 이미지가 강하다. 토마토는 빨간 색과 그 독특한 향이 특별한 느낌을 준다. 무는 시래기도 생각나고 목에도 좋은 약효과가 있고 해서 역시 대단한 식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배추는 또 어떤가. 소금에 절여지기는 하지만 우리는 배추가 없으면 못살지 않는가.

감자와 고구마도 당당하게 그 위력을 나타낸다. 그 땅 속에서 그렇게 탐실한 열매를 맺어서 곡식 대용으로도 되니 얼마나 존재감이 강한가 말이다.

 

그런데 오이. 이 오이는 왠지 연하디 연하고 순하디 순하고 약한 느낌이 든다. 그 긴 몸매가 오그라 든 오이를 볼 땐 왠지 애처러워 보이기도 하다.

얇게 저며져서는 사람들의 얼굴위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버려지기도 하고, 갈아서 형체를 분간 못하게 되나 그 향기만 남기도 하고 동강 동강 썰어서 부추와 함께 절이면 부추가 더 강한 척 하는 오이소박이가 되기도 한다.

 

왠지 우리 식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오이를 나는 괜시리 우습게 보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날 싱싱한 오이를 과일 대용 삼아서 먹으려고 껍질을 깍기전에 씻다가 그만 '지'이익' 하고 손바닥을 베이고 말았다. 오이에게 당한 것이다. 오이의 몸에 있는 가시가 그렇게 강할 줄 몰랐다. 아주 얇은 종이에 베인 듯한 느낌이다. 매우 예리하다.

 

싱싱한 오이는 무슨 여드름처럼 돋아난 그 가시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연한 오이의 몸체를 보디가드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왜 오이에게 이런 가시가 필요한 것일까?

금새 물러지지 못하도록 숨구멍 구실을 하는 것일까?

 

오이에게 당했지만 오히려 오이을 통해서 자연의 이치, 섭리, 지혜, 신비로움을 느낀다.

오이에게 베인 자국은 약 1주일 간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오이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이를 씻을 때는 굵은 소금으로 껍질을 문지르라고 요리책에 써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따르지 않고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그냥 대충 씻다가 그렇게 봉변을 당한 것이다.

 

오이. 오이. 순한 오이에게 가시가 있다. 오이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소금에 금새 절여지고 물기에 금새 물러지는 오이일지라도 나름 곤조(성질)가 있다. 모든 것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어수단을 가지고 있다. 약해보이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그의 보호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