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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날

간천(澗泉) naganchun 2013. 6. 17. 06:57

 

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날

 

 

히포크라테스는 체액을 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으로 나누고 이 4가지가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지 않고 어느 하나가 너무 많거나 적으면 지배적인 체액에 따라 기질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 네가지 유형 중에서 나는 다혈질이기도 하고 우울질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우울질이 더 강하다.

 

다혈질의 사람들은 외부 자극에 급하고 강력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반응은 오래 가지 않아서 모든 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의를 품는 법이 없다. 싹싹하고, 쾌활하며, 동정심과 아량이 많은 성향이다.

 

우울질의 사람들은 다혈질의 사람들과 정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강하고 오래 지속돼서 어떤 일을 쉽게 잊지 못하고, 그 일에 매달리게 된다. 이 사람들은 치밀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동정하고, 사랑을 베풀려는 온정을 많이 가진 성향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기보다는 고독을 즐기며, 혼자서 사물에 관해서 숙고하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 하루 종일 묶여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스스로의 세계에 침잠해서 생각하고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렇게 가만히 있어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정해진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데 과감하게 그 일을 그만두고 백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즉, 빈둥거리기다. 창조적 아이디어는 지루하다 느낄 정도로 빈둥거릴 때 나온다고 어느 책에서 보았다. 나는 그 말에서 참으로 큰 위로를 받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거야'. 가만히 방향을 찾고 집중하는 것. 복잡다단한 것에서 중심을 찾아 한가지만을 추려내는 것. 정리정돈하기. 욕심 버리기. 이런 것들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사람을 규정짓는 성격이라는 것, 천성이라는 것, 기질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개인의 각양각색을 나타내주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기질에 대해서는 너무 역행하려고 애쓰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용히 있고 싶을 때 그러지 못하면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말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 배려한다고 쓸데없이 애써 기분 맞추며 수다를 떨면 온 몸이 아파진다. 이런 경험에서 정말로 기질을 거스르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편한 곳에서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을 것 같다. 아니면 집 주변의 나무들을 하염없이 바라볼 것 같다. 내 우울질 기질에 순응하여 고독 속으로 들어가 내 심신을 점검해 보는 힐링(요즘 유행하는)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