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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반음 더 내리고서

간천(澗泉) naganchun 2018. 1. 1. 04:37



반음 더 내리고서

 

 

 

 

 

노래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고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어서 들어서 즐겁고 불러서 흥겹다.

가거라 삼팔선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해방되던 때 동내 유일한 축음기 소유자인 정씨네 집에 동네 젊은 아저씨들이 모여서 노래를 배우는 모습이 생각난다. ‘비 내리는 호남선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1950년대 중반 초년병으로 전주에서 호남선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특별 외박을 다니던 일들이 생각난다.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가곡을 들으면 노래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나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또한 듣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대체로 오후 세시쯤 되면 무료해져서 저절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노래를 듣는다. 내 컴퓨터에는 수많은 노래가 언제든지 생각만 있으면 듣고 부를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5년여 동안 노래를 부르는 모임에 참가하여 매주 화요일에는 노래방에 모여서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항상 모일 때 부르던 노래인데 부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반음 정도 높은 소리를 내려는데 갑자기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전혀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마치 날던 새가 우리에 가두어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서 매우 비애와 허무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40여 년 전 40대 초반, 내가 일본에서 파견 근무를 할 때 이야기이다.

재일 교포들의 모임인 재일한국인거류민단에서는 1년 새해가 되면 신년회라는 모임을 열고 한일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지방 일본인 유지들을 초청하여서 성대한 연회를 열곤 하였다. 자연히 연회가 열리면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마침 본국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라고 하도 노래를 권하는 바람에 내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마침 일본 사람들도 있어서 일본 가곡 중에 <하마베노 우다(浜辺)>를 불렀었다.

잘 부른 것은 아니지만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자리에 돌아오자 그에 참가했던 이바라기대학 교수인 구로사와(黑澤)라는 분이 말하기를 선생님은 음악 선생이십니까? 그 어려운 가곡을 그렇게도 잘 부르시는군요.”하고 과분한 칭찬을 하였다. 물론 일본인의 특장인 <오세이지=무조건 하는 칭찬>이지만 들으니 싫지는 않았다.

 

20대에는 학교에서 오후 여가의 시간에는 나는 풍금을 치고 몇몇 선생님들과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했었다. 결코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동료들끼리 연회를 할 때는 노래를 돌아가며 부르곤 하게 되는데 나는 제주도 민요의 하나인 <이야홍 타령>을 내 나름대로 알렌지하여 불러서 제주도를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게 하곤 하기도 했었다. 그때까지는 타고난 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다.

 

그런데 50대 초에 모진 감기로 편도선을 심히 앓아서 결국 편도선을 모두 적출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편도선을 적출하고 나니 갑자기 음성이 매우 저음으로 변해버렸다.

성역이 원래의 성역에서 2도는 낮아진 것 같았고 그렇기 때문에 최근까지 내가 부르는 노래는 항상 적어도 반음을 내리고 불러야했고 노래에 윤기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제 그보다도 낮게 불러도 소리가 잘 나지 않고 바이브레이션이 되지 않으니 노래라고 부른다 해도 그것은 노래가 아닌 글 읽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서둘러 이비인후과 등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성대 자체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고음을 내려고 할 때 성대의 근육이 이완되어서 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하나는 역류성 식도염과 만성 기관지염이 있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전혀 그런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또한 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느끼지 못하는데 말이다.

전체적으로 목소리가 1도 정도 낮아져버렸다. 전에 저음이었는데 그에다 음이 더 낮아졌으니 이전에 부르던 노래에서 완전히 1도를 낮추어서 불러야 할 듯하다.

가족들은 말을 할 수만 있으면 되었지 팔순이 넘는 나이에 노래를 부르지 못한들 어떠냐 하는 이야기도 하지만 나는 반음을 더 내리고서라도 계속 노래를 부르려 한다.

모든 기관이 퇴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문제가 될 정도로 못쓰게 된 기관은 없으니 여기서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발성패턴을 찾아서 계속하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노래할 수 있는 즐거운 마음으로 만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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