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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백내장 수술 유감

간천(澗泉) naganchun 2017. 12. 3. 13:23



백내장 수술 유감

 

 

 

 

나는 한 때 유행했던 소위 아침 형 인간이라서 그런지, 새벽 4시전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하는 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날씨를 확인하고 다음에는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온고창신>을 열어서 방문자 수와 방문자가 찾았던 글을 확인한다. 그 다음에는 조선닷컴을 비롯하여 국내 신문을 열람하고 다음에는 일본 신문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신문을 열람하고서 특히나 과학 기사를 보고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내려 받아 저장한다. 다음에 번역하여 블로그에 올릴 자료를 편집할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인터넷 자료를 검색한다.

이러면서 매일 4시간 정도를 컴퓨터 앞에서 지내게 된다. 이러한 생활이 10여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지난 8월 달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5분도 되기 전에 눈이 피로하고 머리도 무거워졌다.

이것은 분명히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여 안과를 찾아 여러 가지 검사를 하였다. 결과는 백내장이 많이 진행되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백내장(白內障)이란 안구의 수정체가 혼탁해져서 눈으로 들어온 빛이 수정체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라 한다.

백내장을 수술한다는 것은 눈 속에 뿌옇게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로 교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침내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3일째 날에 눈을 가린 안대를 때었더니 세상의 빛깔이 그렇게도 선명하게 보이는 데 놀랐다. 특히나 놀라운 것은 교통신호의 진행을 나타내는 신호가 지금까지 내 눈에는 푸르게 보였는데 참으로 선명한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청신호(靑信號)’란 말에 매몰되어서 그 빛깔이 내 머리 속에는 푸른 빛깔로만 각인되었던 것인지 40여년 가까이 운전을 하였으나 교통 신호를 착각하여 어긴 적은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13년 전에 신차로 사들였던 내 차는 연한 하늘색으로 보여 차를 인도하러 온 기사를 보고 색깔이 주문과 다르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였었는데 지금은 은빛 회색으로 보인다. 주문했던 색깔이다. 내가 항상 검은 옷으로 알고 입던 옷이 알고 보니 짙은 남색이었던 것이다. 그 남색 옷을 입고 장례식에 문상을 했으니 검정 옷으로 예를 갖춘다하고서는 예에 어그러진 채로 태연히 지냈었다.

지금은 모든 물체의 빛깔이 명징한 빛깔로 내 눈에 들어와서 세상이 밝고 환하여 신천지에 온 느낌이다.

도대체 나는 그 오랜 동안 세상을 어떻게 보고 살았단 말인가 하는 황당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눈에 보이는 빛깔이 사실과 다르게 보였던 것처럼 내 마음의 눈에는 얼마나 생각을 흐리게 하는 눈의 백내장 같은 것이 있어서 마음을 흐리게 했던 것일까.

젊어서부터 인간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탐(), (), ()의 삼독을 벗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지나친 탐욕으로 내닫지 말 것이며, 애증과 원망과 한의 감정에 매이지 말 것이며, 무지하여 일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리라 생각하며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다.

행운이 나를 도와서 직장 생활은 도전과 노력하는 대로 순조롭게 변용을 이루어 보다 나은 자리로 보다 더 크고 넓은 자리에서 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가 있었고 마침내 큰 실수 없이 주어진 과업을 다하고 정년을 맞을 수 있었다.

내겐들 어찌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오욕 칠정이 없었으련만 격변하는 세태와 모든 불리한 나의 존재상황에서 더 높은 가치를 향하여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도전은 현실 밀착형으로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50년 사이에 두 차례나 살기 위한 새집을 짓기도 하였고, 8년여 에 걸쳐 밀감과수원을 조성하여 수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서 매각해야 했고,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서 살기 위하여 주택을 매입하고 매각하기도 하였다. 4~5년에서 15년을 주기로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서울로 또 고향으로 식솔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는 서너 차례의 이사를 해야 했었다.

이런 상황마다에서 이제 밀려드는 후회는 일을 꾸미기 위해서는 너무나 오래 깊이 생각하는데, 일을 시작하면 결과를 일찍 보고 싶은 욕심이 앞서서 길게 내다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서둘러서 경제적으로는 너무나 손실이 많았다.

이 어찌 탐욕과 감정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던 결과가 아니라 할 수 있으랴.

이제 저녁노을이 짙게 드리운 황혼 길에서 지난 세월이 깊은 후회를 되씹게 되는구나. 지나간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을 비워 고요 속에 침잠하여 남은여생을 명징한 맑고 고운 빛깔의 세상을 보며 살으리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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