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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마누라 교육열

간천(澗泉) naganchun 2013. 11. 3. 16:15

 

마누라 교육열

 

 

한석봉의 어머니의 떡 써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너는 글을 써라, 나는 떡을 썰마!'

 

아들이 글을 제대로 전념해서 쓸 수 있도록 그 시간 내내 지키고 앉아서 당신은 생계를 꾸리는 일에 전념하며 일부로인듯, 아닌듯 공부 동무 아닌 함께 밤을 지새워 주는 역할. 교육엄마다. 한석봉은 아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시기였는지 엄마가 곁에서 공부 뒷바라지를 한 듯하다. 즉, 오랜 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준 셈이다.

 

우리 집에는 늦은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이 있다. 생업에도 전념하고 공부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욕심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냥 저냥 하려니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옆에서 보기에는 안달복달하면서 공부를 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 된 원서나 논문을 정리 요약해서 내는 과제물이나 발표를 위한 준비는 조금씩 하는 듯 하지만 내가 보는 한에서는 그리 열심히 매진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즉, 평상시에 열공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일이 수업이 있는 날이면 오늘, 엄청나게 분주하고 옆에 있는 나까지 동원이 되어서 마감일을 재촉받은 작가처럼 서두른다. 시간에 쫓긴다. 정말 뭐 대단한 일을 하는 듯 스릴이 넘친다.

 

자료조사에서 원서를 번역기에 돌리는 작업까지 해서 건네면 진짜 공부를 하는 것은 역시 그 당사자의 몫이어서 나는 그리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남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는 쓸데없이 참견하면서 이것저것 더 챙기는 척 하면서 공부 잘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한다.

 

나만 이런가 싶었는데, 주변에 아는 어떤 사람은 아내가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치닥꺼리가 모두 본인의 몫이 되어서 조금 분주하다고 한다. 아내의 공부를 반은 대신 해주는 셈이다.

 

나는 공부를 대신 해주지는 못하고 그저 자료조사와 정리를 해주는 정도이지만 그게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정신이 없다. 헐떡거린다. 그 사람네 가족도 그렇다고 한다. 그 집은 아내가 공부를 하는 중이어서 집안일도 남편 몫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말 배짱 좋은 마누라다. 그 집 아내는 말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싫다고 거절할 줄도 모르고 인간관계에서 생전 손해만 보고 양보하고 싫은 내색도 절대 하지 않고 대부분 수용해버리는 성격인 남편이 공부에서는 은근히 까다로운 점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가 싶다. 더 일찍 해야 할 과업인 학위과정을 마쳤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젊은이들 못지않게 아니 젊은 청년들보다 더 면학열에 불타오르는 사람을 보니 신선하기도 하다. 대학에서는 그냥 알아서 공부하는 식이겠지만 박사학위에서는 정말로 오지게 공부를 시키는 것 같다. 읽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정말 빡쌔게 공부 시키기에 수업료도 그만큼 비싸고 학위 따기도 힘든 것이겠지 싶다.

 

그냥 저냥 마냥 세상살이에서 치이고 좋은 사람으로만 살았던 것 같은 사람이 꼭 해내야지 하고 기를 쓰고 욕심을 부리는 경쟁의 세계가 있으니 나도 응원하게 된다. 이기라고 본인 고집대로 버텨서 이겨내라고, 쟁취해내라고 파이팅을 속으로 외친다.

 

뭐할라꼬 그리 호들갑이고?

비서처럼, 잘나가는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일을 하는 멋진 비서진들처럼 나도 제대로 서포트하는 '가게무사'가 되어 볼라꼬! 잘 보필해서 정말 박사 하나 만들어 볼라꼬!! 그런 마누라 되어 볼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