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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반드시 손으로 써서 제출하시오!

간천(澗泉) naganchun 2013. 10. 14. 04:30

 

반드시 손으로 써서 제출하시오!

 

(받아쓰기와 손으로 글씨쓰기)

 

 

 

 

초등학교나 중학교 등지에서는 어떤 숙제를 내주는지 모르겠다. 조카들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 초등학생들이 숙제로 공책에 받아쓰기 하는 것을 본 적은 있다. 연필로 쓰는 모습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아이들은 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 손글씨를 연마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와 더불어 초등학교에서는 파워포인트 같은 것으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해서 자신의 꿈이나 의견 등을 발표하는 과제도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익숙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수륙양용 자동차나 자전거, 보트 같이 다재다능한 것 같다. 이미 아이들은 몇 가지를 한꺼번에 마스터 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지고 있다.

 

한편, 자타가 어른이라고 하는 나는 이제 손으로 써서 내는 숙제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 교수님의 과제는 반드시 '손으로 써서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손으로 쓰지 않은 리포트는 절대로 제출할 수 없거니와 아무리 사정을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이렇게 다 큰 어른인 대학원생들에게 과제 리포트를 낼 때 손으로 써야 한다'는 조건을 내거는 교수님들이 간혹 계시는 듯하다. 세종대왕의 후예들답다. 꼭 손으로 작성해야 한다. 즉,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서 등으로 타이핑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붙는다. 손글씨, 그게 점수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절대 조건이다.

 

어릴 때 손으로 글씨 쓰다가 타이핑을 배우고 나서는 워드프로세서를 다루게 되고, 그 뒤 글자를 컴퓨터로 입력하게 되면서는 간단한 메모를 제외하고는 거의 손으로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말 읽어야 할 책인데 잘 읽히지 않고 진도가 나가지 않자, 컴퓨터로 타이핑하면서 책 한권읽기에 도전한 적이 있다. 타이핑을 잘 해서 그나마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서인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책을 손으로 직접 써가면서 읽어보자고 도전했다면 아마도 지금도 아직도 나는 그 책 한권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유명한 소설가분들은 직접 손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을 고집하는 분이 계시다고 한다. 그 노고를 생각하면 넙죽 엎드리게 된다. 아마 땀이 피가 되는 인내와 고통이 동반했을 노역이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약 A4용지 한 장에 요약을 하는 숙제의 경우, 그 한 장을 손으로 메우는 작업은 쉽지 않다. 그것을 아무리 간략하게 리포트를 쓴다 해도 2장 정도는 쓰게 되는데, 그것이 고역이다. 물론, 글씨를 예쁘게 반듯하게 쓰려고 해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줄이 쳐진 공책에 쓰는 것은 조금 낫다. 햐~얀 순백색의 A4용지에 쓰려면 줄도 비틀어지지 않게 애써야 하고, 그야말로 '초자'가 된다.

 

이렇게 손으로 글을 쓰는 일과 한글을 아끼는 일이 왠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자판만 두드리면 자기 마음에 쏙 드는 글자들을 골라내어 정갈하게 글을 종이에 옮길 수 있는데, 웬 고생이람. 그래도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함과 동시에 집중도 잘 된다. 내용이 '쏙쏙' 뇌에 박히는 기분이다. 좋은 일이다. 교수님의 숙제의 절대조건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