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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나도 가끔 나쁜 고객이 되고 싶어진다

간천(澗泉) naganchun 2013. 3. 25. 05:46

 

나도 가끔 나쁜 고객이 되고 싶어진다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과자를 많이 사게 된다. 그 과자 봉지가 외양은 똑같은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량이 달라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왠지 봉지 속이 휑한 느낌이 들어서 뜯어 보면 예전과 달리 내용물이 부실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른 손으로 한움큼 집어서 덜어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땐 정말 화가 난다. 그럴 땐 정말 속은 기분이 든다.

물론 과자는 아이들만 먹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고서도 어른이 되기 까지의 과정에서 과자는 나의 인생과 동행하는 필수품이었다. 과자가 없는 중학교 매점을 상상해 보라.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쉬는 시간이면 매점으로 달려가는 게 일이었고, 수업시간에도 밑에 감춰두고 먹으며 아슬아슬하게 바스락 거리지 않고 소리 내지 않고 먹으려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과자는 항상 책상 위에 문방사우보다 떡하니 올려져 있는 것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빵집 도넛 때문이다. 동그란 링도넛인데 말랑말랑한 것이 아니고 딱딱한 생도넛 종류다. 그 크기가 큼지막한게 참으로 먹음직스러운 도넛이다. 장식이 많이 된 빵과 케잌종류들이 즐비한 제과점에서 그 도넛은 의연하게 단순한 모양새로도 번듯하게 자리를 차지하던 것이다.

 

그 수많은 빵 중에서도 유독 그 도넛에 손이 가는 것은 단순한 모양과 맛에 있다. 그 단순하게 동그스름하면서도 조금씩 네모 모양을 하기도 하고 큼지막하고 노르스름한 그것이 참으로 먹음직 스럽다. 최근에 보니 그 도넛이 살이 빠진 느낌이다. 작아지고 초라해 보인다. 왠지 다른 품목을 보는 것 마냥 모습이 달라보인다. 그 지름의 크기가 어딘지 안쪽으로 축소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예전에 사각 쟁반에 몇 개가 진열되어 있었는지 확인을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요즘의 그것은 어쩌면 두 개는 더 사각 쟁반에 들어갈 정도로 도넛의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차린다. 확실하게.

 

같은 가격에 아무런 고지도 없이 교묘하게 그 크기를 줄인 술수가 얄밉다. 많이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크지막한 그 당당함이 매력이던 도넛인데.

 

그 매력이 사라져버렸다. 맛이야 어떻든 간에 그 도넛이 나에게 주던 가치가 상실되고 말았다.

 

시침 뚝 떼고 있는 제과점이 야속하다.

과자 회사 사람들도 봉지를 만져보고 그 봉지를 개봉하여 쏟아낸 내용물의 양이 얼마나 초라하게 줄어들었는지 부끄러워 해야 한다. 만족감을 빼내버린 것이다.

 

물론 안다. 경기가 어렵고 온갖 원재료값이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기름값도 오르고...

등등등이다. 안다.

 

그래도 밥처럼 먹는 과자에서 그러니 인심이 참 야박하다. 정이 딱 떨어진다. 그들은 양심껏 정성껏 만들어 판다고 하겠지만 왠지 그 상술이 너무도 훤히 보인다. 그래서 진상을 떠는 소비자가 되고 싶어진다. 심술을 부리면서 제품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고 싶어진다. 그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그 몸부림이 이해가 되면서도 몇 개 집어먹을 게 없는 실속없음이 나를 울린다. 푸짐하지 않아서 서글프다. 감질나는 과자의 양에 더 마음이 허해져서 단것을 더 찾게 되니 우리는 저절로 과자회사의 전략에 넘어가게 되고 만다. 그래서 회사들은 수지맞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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