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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서울국제마라톤을 뛴 부부의 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13. 3. 18. 04:14

 

2013년 서울국제마라톤을 뛴 부부의 일기

 

<남편일기>

 

이번이 32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다.

 

아침 5시 반, 와이프의 부산한 준비소리에 저절로 눈이 뜨이며 아 오늘이 바로 지난 3개월간 알게 모르게 준비하고 기다려 왔던 동아서울국제마라톤이구나 하는 기대감이 든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참여하는 대회라서 더욱 기대가 되는 아침이다.

지하철로 서울역에 도착해서 환승하고 시청역에 내리니 7시경인데 바깥 출입구로 나서자마자 울리는 스피커와 2만여 명의 달림이에 응원나온 사람들까지 옷을 맡겨야하는데 사람에 치여 운반차에 도착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겨우 옷을 맡기고 나는 출발존인 A존으로 와이프는 D존으로 서로의 무사완주를 기원하며 이동한다.

 

8시 10분경 총성과 함께 출발하고 페이스를 키로당 5분으로 맞추려 노력하면서 남대문을 돌아 한국은행앞 을지로를 지나 종로 청계천로로 달림이의 거대한 물결속에 한 흐름이 되어 함께 진행해 나간다.

 

10키로 지점에서 동호회 한 형님이 나를 추월해가고 15키로 지점에서 또 두명의 후배가 화이팅을 외치며 추월해 간다.

햐 이번 대회도 기록달성은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완주만이라도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면서 최선을 다해 걷지 말고 완주하자라는 결의를 다진다.

 

30키로 정도 가니 발바닥 아프고 통증 오고 항상 이 구간쯤 오던 고통이면서도 아예 무시하고 한번 해보자라는 오기가 들면서 팔치기를 짧게 하고 치고 나가려니 35키로 지점까지 꽤나 페이스가 올라오면서 추월해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출발 때는 춥다는 느낌이었는데 땀 흐르고 몸이 더워지면서 정말 달리기에 좋은 날씨라는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든다.

 

35키로 잠실대교를 지나며 작년 이맘때 여기에서 만났던 후배도 생각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달린다는 한가지로 정리되는 즐겁고도 고통스런 체험을 해가며 40키로를 지나는데 이때의 바램은 오직 하나 기록달성은 물건너갔고 발에 쥐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 종아리를 달래가며 완주만 하자라는 간절한 바램이다.

 

드디어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진입로로 들어가며 오늘 먼저 와 있겠다고 했던 와이프를 눈으로 찾아가며 성큼성큼 들어가려니 주경기장 앞 야구장 근처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보게되니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수 없는 반가운 마음이다, ‘사랑해’ 라는 고양된 소리로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운동장으로 진입한 후 최후의 스퍼트를 하며 골인지점을 통과한다.

 

전자칩의 소리로 결승점 통과와 함깨 시간을 확인해보니 3시간 45분 24초다.

역대 완주 기록 중 6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이다^^

3월 17일 2013년 봄의 축제가 또 한번 절정을 맞이한다.

 

 

<아내일기>

오늘은 매해 년례 행사처럼 기다리는 마라톤의 날이다. 이번에는 지난번 완주 이후로 무리하게 달린 여파로 인하여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아 출발만 하자는 심정으로 함께 행사장으로 향한다.

 

항상 그렇지만 옷에 넘버를 달고 착용할 모자며 장갑 등 준비물을 챙기고 간단한 요기 거리와 음료수 과일(귤), 물수건, 갈아입을 옷 등을 챙기는 일은 나의 몫이다. 출발하려면 남편은 일어나서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운동화에 전자 기록칩을 꿰고 신발끈을 질근 묶는 일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풀코스 완주와 기록단축이라는 큰 사명과 그 과정에서의 고통을 감내할 과제가 남아 있으므로 나는 기꺼이 지원군의 역할을 맡는다.

 

아침 일찍 지하철에는 마라톤 참가하는 복장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기록이 3시간대인 사람은 A그룹이다. 나는 기록이 5시간대이므로 D그룹이다.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은 E그룹이다. 엘리트들이 출발하고 그다음에 A, B그룹이 출발한다. 조금 있다가 C,D,E그룹이 이어서 출발한다. 워낙 많은 인파가 달리는 경기이므로 시차를 두고 출발하는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추위로 발을 동동거리며 준비체조를 하면서 카운트 다운을 기다린다. 박원순 시장은 C그룹에서 함께 달린다고 아나운서가 말해준다.

 

절대로 요행을 바랄 수 없는 마라톤. 정직한 스포츠 마라톤. 연습을 전혀 하지 않은 나의 상태로 보아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고 10킬로미터만이라도 달리자라고 생각을 했다. 출발선에서는 아니 15킬로는 가자! 라고 목표를 재설정했다. 그러나 웬걸 3킬로 미터 지점부터 지치고 힘들고 그만두고 싶어져서 목표를 수정한다. 5킬로만 가자라고. 5킬로 미터 지나면서 보니 유턴하는 구간이다 보니 나의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물을 마시고 다시 힘을 내고 달린다. 10킬로미터만 가자로 정한다. 무리하지 말고 달리자하면서 나를 앞질러 물밀듯 달려가는 달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달린다. 6킬로, 7킬로, 10킬로.

 

푯말이 보이고 10킬로에 준비된 물이라도 마시고 관두자 라고 생각한다. 물을 마신다. 걷는 나를 보고 진행 스탭들은 응원을 한다. 힘내라고. 이제 흐름에서 일탈하고 가슴에 달았던 번호표를 떼어내고 손에 쥔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상왕십리역으로 향한다. 미리 바지 호주머니에 꼬불쳐 둔 전철권으로 2호선을 타고 종합운동장으로 향한다. 나처럼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케냐사람이 1등으로 들어왔다고들 한다. 전광판에서는 레이스 모습이 보이고. 일단 짐을 찾는 곳으로 향한다. 내가 미리 먼저 와 있을 것을 상정하고 남편의 짐을 내 짐에 맡겼었다. 두 개의 가방을 찾아 탈의실에서 옷을 한가하게 갈아입고 기록칩을 반납하는 장소로 간다. 완주를 하지 않았는데도 메달과 빵 등의 간식봉지를 준다. 소보로빵을 먹는다. 그리고 스포츠 맛사지를 무료로 해주는 코너로 갔다. 텅 비어 있다. 그도 그럴것이 남자로 제일 잘 달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들어오지 않을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사람은 진행요원이거나 나처럼 중간에 포기해서 온 사람이다. 나보고 그런 몸으로 어찌 풀코스를 뛰려하느냐, 살을 빼라, 몸이 불어터졌다고 따끔한 충고를 한다. 나는 타박을 받으며 몸 관리를 하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 한다. 그래도 10킬로 달렸으니 잘 달렸다고 해준다.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으로 가서 기다린다. 약 1시간 가량 기다린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달리는 사람들 틈에서 남편을 가려내는 일이 남아 있다. 들어오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사람들 곁에서 완주를 앞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한참 뒤 저쪽에서 두리번 거리는 남편을 발견하여 수고했다고 응원을 한다. 사진을 찍는다. 나는 골인 지점으로 짐을 메고 달려간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골인 한 다음에 나오는 사람들 틈에서 남편을 찾아내서 본격적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엄청 고된 모양이다. 나도 달려봐서 안다. 그 고통을...

 

허리를 굽힐 수도 없으므로 내가 운동화에서 기록 칩을 떼어준다. 기록 칩을 반납하는 곳으로 어기적 거리면서 느리게 가서 간식과 메달과 교환하고 양지바른 곳으로 가서 요기를 한다. 쉰다. 다시 맛사지 무료로 해주는 곳으로 가서 맛사지를 받는 대기열에 줄을 선다. 아까 내가 받았던 그곳이다. 나에게 심한 말을 한 그 대장이 왔다 갔다 한다. 나는 또 받으려는 줄로 오해를 살까봐서 뒤로 물러나 있다.

 

아직도 레이스를 펼치는 사람들을 마주보면서 종합운동장 인근을 빠져나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내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준다. 서로 수고했다 격려하느라 하루해가 진다. 좋은 일요일이 지나간다. 감사한 하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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