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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한국한시

百花軒(백화헌)

간천(澗泉) naganchun 2010. 6. 23. 07:29

 

百花軒(백화헌)

 

 

 

 

 

 

 

 

 

고려- 이조년/李兆年

 

 

 

 

 

 

 

 

 

  -백화헌-

 

  알리노니 꽃 심을 때 욕심 내지 말고  

그 가지 수는 부디 백을 넘지 마라. 

 눈 속 매화, 서리 국화 그 청초한 풍채 외에  

헛된 자줏빛과 붉은 빛은 부질없이 많음이다.

 

 爲報栽花更莫加(위보재화경막가) 

 數盈於百不須過(수영어백불수과) 

 雪梅霜菊淸標外(설매상국청표외) 

浪紫浮紅也漫多(낭자부홍야만다)

 

 

 

 

*위보(爲報)-위하여 알림. *불수과(不須過)-모름지기 과해서는 안 된다. *청표(淸標)-청초하고 고상함. *낭자부홍(浪紫浮紅)-허황한 자줏빛, 부화한 붉은 빛. *만다(漫多)-부질없이 많음. *재(栽)-가꾸다. *영(盈)-차다. *수(須)-모름지기. *청(淸)-맑다. *표(標)-나뭇가지 끝. *랑(浪)-물결. *부(浮)-뜨다. *만(漫)-넘쳐흐르다.

 

작자

이조년(李兆年)(1269-1343)

 

고려의 문신, 문인. 본관 성주(星州). 자 원로(元老). 호 매운당(梅雲堂) 백화헌(百花軒). 시호 문열(文烈). 1294년(충렬왕 20) 진사로 문과에 급제, 안남서기(安南書記)가 되고 예빈내급사(禮賓內給事)를 거쳐 지합주사(知陜州事) 비서랑(秘書郞)을 역임하였다. 1306년 비서승(秘書丞) 때 왕유소(王惟紹) 등이 충렬왕 부자를 이간시키고 서흥후(瑞興侯) 전(琠)을 충렬왕의 후계로 삼으려 하자 어느 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최진(崔晉)과 충렬왕을 보필하였으나 이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다. 그 후 풀려나와 1313년간 고향에서 은거했고, 심양왕(瀋陽王) 고(暠)의 왕위찬탈 음모를 원나라에 상소하였다. 1230년 충숙왕 귀국 후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고 전리총랑(典理摠郞)을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승진, 수차 원나라에 다녀왔다. 1240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정덩문학(政堂文學)에 오르고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이 되어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왕의 음탕함을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이듬해 사직, 후에 성근익찬경절공신(誠勤翊贊勁節功臣)이 되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시조 l수가 전한다. 공민왕 때 성산후(星山侯)에 추증, 충혜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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