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居(산거)
고려- 이인로/李仁老
-산에 살면서-
봄은 갔건만 꽃은 아직도 있고
하늘은 맑은데 골짝은 음침하다.
저 소쩍새가 한낮에 우나니
비로소 사는 곳의 깊음을 알았도다.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天晴谷自陰(천청곡자음)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거(去)-가다. *유(猶)-아직. 오히려. *재(在)-있다. *청(晴)-하늘 맑다. *곡(谷)-골짜기. *음(陰)-그늘. *두(杜)-막다. *견(鵑)-소쩍새. *제(啼)-울다. *주(晝)-낮. *시(始)-비로소. *각(覺)-깨닫다. *복(卜)-점. *거(居)-살다. *복거(卜居)-살만 한 곳을 정함. *심(深)-깊다.
감상
봄은 갔는데 그 봄꽃은 아직 남아있구나. 그리고 하늘은 청청하게 맑은데 골짜기는 깊어서 음침하게 어둡구나. 한낮에 소쩍새가 우는 것을 보니 문득 내가 산속 깊이 살고 있음이로다.
1구에서 시간을 말하고 2구에서는 공간을 말한다. 3구에서 나의 존재를 깨우치는 소쩍새 소리로 깊은 산골에 내가 살게 되었음을 확인한다.
한편 은유적인 생각을 해보자. 희망을 상징하는 봄은 지나갔다. 이미 나의 꿈을 펼칠 기회는 가 버렸지만 아직도 내 맘에는 희망이 있다. 하늘이 맑으니 나의 현실 참여의 기회는 오는데 앞은 골짜기처럼 캄캄하구나. 그런데 어쩌다가 나는 이 깊은 산골에서 살아야 하게 되었는가. 하고 자연의 소재를 빌어서 자신의 실존 상황을 한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자
이인로(李仁老)(1152-1220)
고려의 문신. 자는 미수(眉戒). 호는 쌍명재(雙明齋). 초명 득옥(得玉).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난을 피한 후 다시 환속하였다. l180년(명종 10) 문과에 급제, 직사관(直史館)으로 있으면서 당대의 석학(碩學) 오세재(吳世才), 임춘(林椿),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李湛之) 등과 결의, 함께 어울려 시주(詩酒)를 즐겼다. 이들을 강좌7현(江左七賢)이라고 한다. 신종 때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고종 초에 비서감(秘書監),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다. 시문(詩文)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능해 초서(草書) 예서(隸書)가 특출하였다. 저서에 <은대집(銀臺集)> <후집(後集)> <쌍명재집(雙明齋集)> <파한집(破閑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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