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성과학자
28, 큐리 부인 이야기 7-1
7, 후진 육성과 죽음
1) 연구소
미국 여행은 대성공을 거두어 연구소는 라듐 이외에도 많은 광석 샘플이나 분석기기류 그리고 자금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여행에서 자신의 명성이나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커져서 이미 연구나 실험에만 몰두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하고 마리는 파리의 라듐연구소를 훌륭한 방사능연구소의 중심으로 키우려고 하였다. 또 1922년에는 유네스코의 전신인 국제지적협력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 ICIC) 멤버의 12명 중 한사람으로 더해졌다.
딸 조리오와 큐리부부
연구소는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스텝을 품고 마리는 그들 지도에 많은 시간을 내었다. 매일 아침 그녀의 주위에는 연구나 실험 지침이나 진척을 상담하고 논문의 교정 등을 바라는 연구원들이 모였다. 마리는 적절한 지시나 지도를 하고, 성과가 오른 때에는 축하의 모임을 가지는 등 그들을 이끌고 그 실력을 신장시켰다. 알파입자의 에너지가 일정하지 않은 사실을 나타낸 사로몬 로젠블룸(Salomon · Rosen Blum), 진공 중의 X선 관찰을 행한 페르난 오르웨크(Fernand · Oruuekku) 프란시움(francium=원자번호 87의 원소, 원소기호 Fr)을 발견한 마르그릿트 페레(Marguerite Catherine Perey、1909년10월19일~1975년5월13 일=프랑스 물리학자, 1939년에 프란시움 발견) 등이 연구소에서 나왔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딸 이레느(Irène Joliot-Curie、1897년9월12일~1956년3월17일=프랑스 물리학자 큐리의 장녀)와 그 남편 프레데릭 조리오=큐리(Jean Frédéric Joliot-Curie、1900년3월19일~1958년8월14일=프랑스 물리학자. 이레누의 부, 큐리의 사위)의 인공 방사능의 연구이고 장녀 이레느 부처는 193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1919년부터 1934년 사이 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은 483건이었다. 그리고 방사능이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도 점차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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