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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28, 큐리 부인 이야기 6-2

간천(澗泉) naganchun 2025. 1. 20. 02:45

위대한 여성과학자

28, 큐리 부인 이야기 6-2

 

 

 

2, 미국 방문

 

연구소는 재개했으나 그것은 설비도 시료도 결여된 상태였다. 1920년에 로스차일드(Rothschild=독일계 유태인 일족으로 유럽 각지에 은행 설립)가 출자하여 큐리재단이 설립되어 방사선치료의 연구를 지원했는데 물리나 화학 연구에는 거의 비용이 돌지 않았다.

동년 5월 미국의 여성 잡지 <데일리니에터(Delineator)> 편집장인 윌리암 브라운 메로니(William Brown Meroney) 로부터 요청을 받아 마리는 인터뷰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1그램의 라듐금속이라고 답하였다. 그 가격은 이미 10만 달러에 상당했는데 미국의 혜택 받은 과학연구소를 아는 메로니로서는 놀라운 회답이었다. 그녀는 귀국 후 캠페인을 일으켜 마리에게 라듐을 증정하는 자금을 모았다.

 

그녀의 요구에 응해서 1921년에 마리는 딸 둘과 미국으로 갈 것을 결정하였다. 그 스케줄에 많은 대학의 방문에서 미국 대통령과의 식전까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안 프랑스 정부는 당황해서 자국이 어떤 명예를 주지 않은 불찰을 보충하려고 다시 레지온 도누르( la légion d'honneur 명에의 군단 국가훈장) 훈장을 수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이유로 마리는 거절하였다.

 

연구에서 동떨어진 이 선전활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리는 각지에서 대환영을 받고 대통령 워렌 하딩(Warren Gamaliel Harding, 1865년11월2일~1923년8월2일=제29대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라듐이 수여되었다. 단 그녀는 이것을 개인에게 증여한 것이 아니고 연구소에 기증하는 것으로 하여 개인 재물로는 하지 않았다.

1929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가서 마리는 1925년에 바르샤바에 설립한 큐리연구소에 도입하는 기기류의 자금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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