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단상
한참 전에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 일반화 되더니 요즘에는 <웰다잉>이라는 말이 유행되려 하고 있다. <웰빙>이 <잘사는 것>이라면 <웰다잉>은 <잘 죽는 것>이라는 말이라 한다.
<웰다잉>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인 즉 <웰다잉>이란 “우리 삶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 잘 죽기 위해 의미 있고 품위 있는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죽음에 대한 강연이나 죽음 체험 학습 같은 행사를 열기도 한다고 한다.
하기는 수년 전에 일본인 이시다 히데미(石田秀實) 교수의 <죽음의 레쓴>이라는 책을 읽은 일이 있다. 진시황의 죽음을 비롯하여 인류의 다양한 체험과 사상을 참조하여 죽음을 깊이 생각하고 인간의 참 사는 방법을 찾아보는 일곱 가지의 레쓴 방법을 적고 있으나 난해하고, 이런 책이 다 있군! 하는 기분이라서 그저 한 번 읽었었는데 이제 <웰다잉>이라는 말이 대두되고 있으니 한 번 잘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책상머리에서 들락날락 하고 있다.
죽음이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숙명이기 때문에 사실 두려움을 가지고 말하기를 꺼려 온 것이 사실이다.
일찍이 유가에서는 인간의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라 하는데, 이제 말하는 <웰다잉>이란 이 고종명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죽음을 체험해 본다고 하여 관 속에 들어가 보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하였는데, 피할 수 없이 당할 일인데 왜 저런 짓을 하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일이 있다.
죽음을 피하여 불로장생하려고 진시황이 불로불사약을 구하러 동남동녀 3천을 동해로 떠나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은 불로장생하고자 도인법(導引法)을 생각해내기도 하였고 여러 가지의 양생법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죽음을 체험하고 살아난 사람이 있다는 말은 없다.
<장자(莊子)> 외편 지락편에는 장자가 여행길에 해골을 만나서 해골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초(楚)나라에 가서 하나의 해골을 만났는데,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해서 가지고 있던 말채찍으로 때리면서 어찌해서 죽었는가 하고 문답을 하고 밤에는 그 해골을 베개 삼아 잠을 잤는데 꿈속에 해골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우리들 죽음의 세계에는 인생의 번뇌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만일 자네가 죽음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가르쳐주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장자가 “가르쳐주게.” 하고 응대하자, 이제부터 해골의 설교가 시작된다.
“원래 죽음의 세계에는 위에 임금이 없고, 아래에 신하가 없다. 그러니 군신의 관계는 없다. 춘하추동의 변화도 없다. 오직 천천히 천지와 수명을 같이할 뿐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세상에서는 왕의 즐거움이 최고라고 하지만, 우리들의 즐거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자는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믿을 수 없으므로 “자네는 억지소리를 하는 게지, 실은 살고 싶은 게지. 혹시 살고 싶다면, 내가 죽음을 다스리는 대왕에게 부탁해서 자네를 한번 살려주려 하는데 어떠한가. 그러면 자네는 원래의 몸이 되어 살도 붙고, 형체도 갖추어진다. 그리하여 부모처자가 있는 곳에 돌아가서 고향의 벗들을 만날 수도 있다. 어떤가. 해볼 생각은 없는가?” 하고 말하자, 슬픔과 걱정으로 못 견디는 얼굴을 하고, 이마의 주름살을 돋우며 “내가 어찌 남면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또 다시 인간의 수고를 한단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한다.
과연 이 해골이 말하듯이 죽음의 세계란 왕의 생활보다 좋은 곳일까?
공자님은 인간의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푸른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을 본다. 평상시에는 그냥 보고 넘겼던 구름의 흐름. 빠르게 느리게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높이 떴다가 낮게 떴다가 위치와 모양을 수시로 바꾸어가며 흐르는 저 구름처럼 변하는 이 세상에서 무엇 하나 나의 뜻을 관철시켜 이루어진 것 보다는 세태의 흐름과 시운에 따라 이루고 버리곤 하며 노년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노년이 되면 건강을 잃고, 직장을 잃고, 벗을 잃고, 돈을 잃고, 꿈마저 잃게 된다. 잃어져 가는 것을 악을 써서 붙잡고 있으려 한다고 되는 일인가. 그러나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꿈이라 생각한다. 과연 노년의 꿈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남겨서 좋을 것과 남겨서는 안 될 것을 가려내는 일을 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오직 후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서 유유자적하며 살다가 이 세상에 남겨서는 안 될 것들을 몽땅 거두어가지고 가리라 생각해 본다.--끝--
'단상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壁) (0) | 2009.06.22 |
---|---|
나의 스승은 해와 달 같다. (0) | 2009.06.03 |
요즘 흔해진 이상한 표현 (0) | 2009.04.20 |
공자의 편애 (0) | 2009.03.20 |
낮잠 자는 젊은이 (0) | 2009.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