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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8, 마이클 파라데이 이야기.(3-2/4)

간천(澗泉) naganchun 2024. 7. 26. 02:58

8, 마이클 파라데이 이야기.(3-2/4)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 풍부한 전기세대의 막을 열다.=

 

 

2) 전기(電氣)와 자기(磁氣)

 

 

파라데이는 특히 전기와 자기의 연구로 잘 알려진다.

그가 기록하고 있는 최초의 실험은 7장의 반페니화와 7장의 아연시트에 6장의 염수를 적신 종이를 끼어서 쌓아 올린 볼타전지를 만든 일이다. 이 전지를 사용하여 유산마그네슘을 전기분해하고 있다.

 

덴마크의 과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Ørsted1777-1851, 덴마크의 물리학자, 화학자, 전자기학의 기초를 세움)가 전지와 자기의 관계를 나타내는 현상을 발견하자 1821년에 험프리 대이비(Sir Humphry Davy)와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 William Hyde Wollaston, 1766-1828, 영국의 화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이 전동기를 만들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파라데이는 두 사람과 의론하여 전자회전(electromagnetic rotation)이라 이름붙인 움직임을 생기게 하는 2개의 장치를 만들어내었다.

하나는 수은을 넣은 접시의 중앙에 자석을 세우고 위에서 수은을 적시도록 철사를 내려뜨리고 그 철사와 수은을 통하도록 전류를 흘리면 전류에 의하여 생긴 자장이 자석의 자장과 반발하여 철사가 자석의 주위를 계속 도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단극전동기라 불리는 것으로 거꾸로 자석측이 철사의 둘레를 돌게 되어있다. 그 실험과 발명이 현대의 전자기술의 기초를 구축했다. 이 성과에 흥분한 파라데이는 데이비나 울러스톤의 허가를 받지 않고 그것을 공표하였다.

 

이에 노한 데이비와 파라데이의 관계는 악화하여 데이비는 전자기 이외의 연구를 파라데이에게 강요하여 수년간 전자기연구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데이비는 파라데이가 왕립협회 회원이 되는 것을 맹렬히 빈대하고 파라데이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라데이의 친구의 추천에 의하여 회원이 되었다.

또 데이비는 울로스톤 자신이 부정하고 있는데 무관하게 파라데이를 <울로스톤의 연구를 훔쳤다>고 비난하곤 하였다.

더구나 데이비는 <나의 최대의 발견은 파라데이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은 제본점의 견습공이 19세기 최대의 과학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824년 파라데이는 도선을 흐르는 전류를 외부의 자장에 의하여 조절가능한지 어떤지를 연구하기 위하여 간단한 회로를 제작하였는데 그런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3년 전 같은 실험실에서 빛이 자장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실험하고 있어서 그 때에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 후 7년간은 광학용 유리(납을 더한 붕규산 유리(borosilicate glass의 제법을 완성시키는 데에 쓰여서 후의 연구에서 그것이 빛과 자기의 관계의 연구에 쓸모가 있게 되었다.

 

광학의 일 외에 시간을 써서 전자기를 포함한 실험의 논문을 공표하고 데이비와의 유럽여행에서 만난 해외 과학자와 함께 펜팔을 했다. 데이비 사후 2년 후인 1831년 파라데이는 일련의 중요한 실험을 해서 전자유도를 발견하였다. 겨우 수개월 전에 조지프 헨리Joseph Henry1797-1878, 미국의 물리학자)도 발견하고 있지만 두 사람에 선행해서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샨데데스키가 1829년과 1830년에 같은 논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전자기현상을 역학에서의 원격력이라고 생각한 데 대하여 파라데이는 공간에서의 전기역성. 자력선이라는 근접 작용적 개념에서 연구하고 있다. 파라데이의 돌파구는 철의 고리에 절연 도선을 말아서 코일을 2개 만든 것이고 한편의 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또 다른 한편의 코일에 순간적으로 전류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현상을 상호유도라 부른다. 이 철의 고리의 코일은 지금도 왕립연구소에 전시되고 있다. 그 후의 실험으로 공심(空芯) 의 코일 속에서 자석을 움직여도 전류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 자석을 고정시켜 도선의 방향을 움직여도 전류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들 실험으로 자장의 변화에 따라 전장(電場)이 생기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 파라데이의 전자유도의 법칙은 후에 제임스 크라크 막스웰(James Clerk Maxwell1831-1879. 이론물리학자)이 수리모델화하여 4개의 막스웰의 방정식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일반화되어 장의 이론이 되고 있다.

 

파라데이는 후에 이 원리를 써서 원시적인 발전기를 제작하고 있다.

1839년 전기의 기본적 성질을 밝히는 일련의 연구를 완성시켰다. 파라데이는 <정전기>, 전지, <동물전기>를 써서 정전기에 의한 유인현상, 전기분해, 전자기학 등의 현상을 낳았다. 그는 당시 과학계에서 상식이었던 이들 전기의 종류의 다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전기는 일종류라고 하고 강함이나 양(전압과 전류)의 다름이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킨다고 했다.

후년 파라데이는 전자력이 전기전도체의 주위의 공간에 미친다는 설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는 그 사고방식을 거절하고 파라데이의 존명 중에는 인정되지 않았다. 파라데이의 대전(帶電)한 물체나 자석에서 자력선이 나온다는 개념은 전자장의 시각화 수단을 제공하였다. 이 모델은 19세기 후반의 산업을 지배한 전기기계식 장치의 개발에서는 매우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