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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15,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이야기 (7/9)

간천(澗泉) naganchun 2024. 9. 17. 03:50

15,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이야기 (7/9)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연구한 세균학자==

 

 

7, 이성 관계

노구치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아이즈와카마츠에서 학생으로 지내던 시절에 세례를 받은 일본기독교단 와카마츠 사카에마치 교회에서 6살 어린 여학생 야마우치 요네코(山内ヨネ)를 마음에 두고 여러 번 연애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여학교 교장을 통해 교회 목사에게 이 사실이 전달되었고 그는 질책을 받았다. 이후 도쿄의 사이세이가쿠샤에서 돌아가신 의사인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준텐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여의사가 되기를 목표로 하는 야마우치를 다시 만나 학우가 되었고 두개골을 선물로 주었다.

1899년 청나라로 떠나기 직전 정장 차림으로 유시마에 하숙하고 있는 야마우치를 만나러 갔고, 청나라에서 귀국했을 때는 노구치와 야마우치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를 선물했다.

 

그러나 야마우치는 이를 부담스럽게 여긴 듯 하숙집 주인에게 부탁해 이후의 만남을 거부했다.

이후 야마우치는 190220세에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의사 모리카와 토시오(森川俊夫)와 결혼했다. 아이즈와카마츠에서 산세이도 병원을 개업했다. 노구치는 야마우치의 사촌인 기쿠치 요시카네(菊地良馨)를 통해 야마우치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름밤에 날아가는 별, 누가 그것을 쫓겠는가. 그대여 밝고 즐겁게 인생을 보내길.>이라는 글을 기쿠치에게 보냈다. 노구치가 일본에 귀국했을 때 기념사진에는 야마우치의 모습이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약혼한 사이토 마스코(斎藤ます)와의 관계는, 미국으로 간 후 노구치에게 고민거리가 되었다. 노구치는 치와키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여러 차례 이 문제를 언급했으며 사이토 마스코에 대해 <얼굴도 못생기고 학문도 없다.>는 평을 남겼다.

 

치와키는 파혼을 권했지만 노구치는 직접 파혼하지 않고 상대방이 먼저 파혼하도록 책략을 꾸몄다. 당시와 현대의 결혼 적령기에 대한 인식이 달라 결혼 시기를 놓칠까 두려워한 사이토 가문에서 여러 차례 약혼 이행을 촉구하자 노구치는 몇 년간 연구 때문에 귀국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유럽 유학 자금으로 수천 엔을 요구하는 등 엇갈린 대응이 많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