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이야기 (6/9)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연구한 세균학자==
6, 부모님과 고향 집
노구치의 아버지 사요스케(佐代助)는 술을 좋아하는 게으름뱅이로, 노구치 가문의 빈곤을 악화시킨 인물로 전기에서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사요스케 자신은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며, 성격적으로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후년에 노구치가 은사나 친구들을 능숙하게 설득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빚을 지게 되고, <빚의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처세술을 발휘한 것은 좋든 나쁘든 사요스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고 한다. 다만 노구치는 술을 좋아하고 방탕을 즐기는 사치스러운 성향도 사요스케에게서 물려받았지만 이는 전기에서 자주 숨겨지는 부분이다.
노구치의 어머니 시카는 농사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산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1899년 산파 개업에 관한 정부의 새로운 면허 제도가 창설되어 모든 산파가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의무화되었을 때 시카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지만 근처 사원의 주지스님에게 간청하여 처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정식 산파 면허를 취득하고, 평생에 걸쳐 약 2000건의 출산에 기여했다. 노구치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 어머니에게 자신의 미국 주소가 새겨진 도장을 보내주었다. 이는 어머니의 글씨가 매우 서툴다는 것을 고려해 보낸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노구치의 어머니 시카는 원래 글을 읽고 쓸 줄 몰랐고 정식 산파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고생하며 글을 배운 사정이 있다. 1912년에 시카가 노구치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현존하고 있으며 그 편지에는 한자의 글을 쓰는 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가 엿보인다. 노구치가 일본으로 잠시 귀국한 이유도 어머니로부터의 편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귀국했을 때 어머니와 계속 함께 있었다고 전해진다.
소년 시절의 노구치는 집을 불편하게 여겨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집을 떠나고 싶어 했다. 타카노 강가에서 있었던 다음과 같은 말다툼이 있었다는 내용이, 그의 누나 노구치 이누의 회고에 남아 있다.
이누: <나는 집을 나갈 테니, 장남인 네가 그 집을 이어받아라.>
세이사쿠: <나는 이어받고 싶지 않아. 누나가 사위를 맞아 집을 이어줘. 희망 없는 농가 따위는 필요 없어, 누나에게 줄게.>
말다툼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세이사쿠는 강에 뛰어들려고 한다.
세이사쿠: <내가 집을 이어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겠다.>
(노구치 히데요 기념회, "노구치 히데요 – 소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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