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이야기 (2/9)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연구한 세균학자==
3, 인체 실험 스캔들
1911년과 1912년에 뉴욕시의 록펠러 의학 연구소에서 노구치 히데요는 결핵 검사법과 유사한 매독 피부 검사법을 개발하려고 시도했다. 실험 대상자는 뉴욕의 진료소와 병원에서 모집되었다. 이 실험에서 노구치는 루에틴(Luetin/매독진단약)이라는 매독 추출물을 실험 대상자의 위팔 피부 아래에 주사했다. 피부 반응은 질병의 진행 단계와 처치에 따라 매독 환자와 건강한 대상자 간에 차이가 있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571명의 실험 대상자 중 315명은 매독 환자였으며, 나머지 대상자는 <대조군>으로, 매독에 감염되지 않은 고아와 입원 환자들이었다. 이 입원 환자들은 이미 말라리아, 한센병, 결핵, 폐렴 등 매독 외의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 대조군의 나머지는 건강한 사람들이었고, 대부분은 2세에서 18세 사이의 어린이들이었다. 노구치와 다른 의사들은 이 실험에 대해 대상자들에게 설명하지 않았고, 동의도 받지 않았다. 당시 비판자들(주로 생체 실험 반대 운동가들)은 노구치가 취약한 고아와 입원 환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생체 실험 반대주의자들은 노구치의 실험으로 인해 아이들이 매독에 감염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스캔들이 되었으며, 미디어가 이에 대해 논의했다. 『라이프』지의 편집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 연구자가 환자에게 '당신의 몸에, 다소 끔찍한 질병과 관련된 조합물을 주입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면, 환자들은 거절했을 것이다.>
노구치를 변호하기 위해, 록펠러 연구소의 비즈니스 매니저였던 제롬 D. 그린제롬 데이비스 그린 (Jerome Davis Greene, 1874-1929, 미국의 은행가, 록펠러 재단을 포함한 여러 주요 조직 및 신탁의 수탁자)은 이 실험에 항의했던 반생체 실험 단체에 편지를 보냈다. 그린은 노구치와 그의 동료 연구자들이 피험자에게 투여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추출물을 시험했기 때문에 이 투여가 매독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구치 자신은 1913년에 치료되지 않은 매독으로 진단받았고, 노구치는 록펠러 병원에서의 매독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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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그린의 설명은 실험의 중요성과 연구 중 의사들이 취한 주의 조치를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1912년 5월, 뉴욕 아동 학대 방지 협회는 뉴욕 지역 검찰에 노구치에 대한 기소를 요청했지만, 이는 기각되었다.
미국에서 피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통과되고, 인체 실험에 관한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그에 이르기까지 사전 동의와 환자/피험자의 권리에 관한 더 많은 절차들이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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