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이야기 (1/9)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연구한 세균학자==
1, 개설
노구치 히데요(野口 英世, 1876-1928)는 일본의 의사이자 세균학자이다. 그는 정오위 훈이등 욱일중광장(正五位・勲二等旭日重光章) 훈장을 수훈했으며, 학위는 교토대학교에서 의학박사, 도쿄대학교에서 이학박사를 받았다.
후쿠시마현 야마군 미츠와촌(福島県耶麻郡三ッ和村(現:耶麻郡猪苗代町/현재의 야마군 이나와시로정) 출신으로, 고등소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올라가 사이세이가쿠샤(濟生學舎/현재의 일본의과대학 전신)에서 공부하며, 의술 개업 시험에 합격하여 의사가 되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학부의 조수를 거쳐 록펠러 의학연구소 연구원이 되었다.
주로 세균학 연구에 종사했으며, 황열병과 매독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노벨 생리학·의학상 후보로 세 번이나 이름이 올랐지만, 후에 그의 많은 업적이 부정되었다. 그는 황열병 연구 중 자신도 감염되어 1928년 5월 21일, 영국령 골드 코스트(현재의 가나 공화국) 아크라에서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 연구 스타일
연구 스타일은 방대한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 수집을 중시하는 실천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수백 개의 시험관을 사용해 수천 개의 슬라이드를 만드는 등 어마어마한 실험 패턴을 실행하여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러한 독특한 연구 자세 때문에 당시 미국 의학계에서는 노구치를 두고 <실험 기계>라거나 <일본인은 잠을 자지 않는다> 등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노구치 본인도 적지 않게 신경을 썼던 것 같으며, 1920년 젊은 세균학자에게 <우리 같은 옛 학자들은 세상에서 필요 없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현대화학의 방법을 익히라고 지적한 바 있다.
1919년 봄, 방미한 지인 의사 <하타 요시모토(畑嘉聞)>에게 <충분하지 않은 단계의 논문일지라도 연구소에서 재촉받아 결국 발표한 것이 찬사를 받게 되면, 그 책임감에 마음속 깊이 괴로워지지만, 그 찬사의 목소리를 자극제로 삼아 연구에 몰두한다.>는 취지의 마음을 밝힌 바 있다. 노구치는 생애 동안 204편의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그 중 150편은 단독으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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