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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15,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이야기 (8/9)

간천(澗泉) naganchun 2024. 9. 19. 03:18

15,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이야기 (8/9)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연구한 세균학자==

 

 

9, 의학자로서

 

플렉스너(Abraham Flexner, 1866-1959, 미국의 화학자. 교육자)에게 제출한 이력서에는 18935월에 도쿄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3년 만에 졸업했다고 적혀 있으며, 록펠러 의학 연구소의 공식 기록에도 그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1893년에는 아이즈와카마츠에서 서생(書生)으로 있었고, 그 이후에도 의술 개업 시험을 준비하는 예비학교인 사이세이가쿠샤(濟生學舎)에 몇 개월밖에 다니지 않았다.

 

또한 미국에서 발표한 첫 논문부터 일관되게 의학 박사(M.D.)임을 명시했지만 당시 일본에는 의학 박사가 수십 명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학력과 직함을 속인 상태였다. (참고로 사이세이가쿠샤는 당시 <도쿄 전문학교 사이세이가쿠샤>라고 불렸으며, 의사 면허를 취득함과 동시에 졸업을 인정했기 때문에, 도쿄 전문학교 사이세이가쿠샤의 졸업생이라는 사실 자체는 맞다. 다만 6개월 만에 졸업했으므로 3년 동안 재학한 것은 아니다.

 

또한 M.D.는 의사 면허와 동의어로, 의학 박사인 Ph.D.와는 다르다. 현재도 일본의 의사들은 의학사(BMBS)라 할지라도 미국에서는 M.D.라고 칭하고 있다.) 1927년에 친구인 호리 이치로(堀市郎)가 미국의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노구치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노구치는 분개하며 전보로 취소를 요청했다.

노구치가 록펠러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본에서 온 유학생과 함께 지낸 시기가 있었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밤, 노구치는 유학생에게 <너도 여기 온 후 여러 가지 공부를 했을 텐데, 슬슬 논문을 발표해 보는 게 어때?>라고 권했다. 그러나 유학생은 <영어가 서툴러서 쓸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노구치는 <그렇다면 네가 일본어로 말한 것을 내가 영어로 고쳐줄게.>라고 말하며 함께 논문을 작성하기로 했다. 논문이 완성된 후, 노구치는 <바로 우체통에 넣어라.>고 지시했지만, 유학생은 <아무래도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로 미루자.>고 답했다. 이에 대해 노구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넣어라. 너와 같은 연구를 누군가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하루라도 발표가 늦어지면, 그것은 더 이상 네가 발표한 것이 아니게 된다. 모든 것이 헛되게 된다.>고 강하게 타일렀다. 유학생은 깊은 감명을 받아, 어두운 밤길을 달려 논문을 제출하고, 무사히 귀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