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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3,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 이야기(8-2/8)

간천(澗泉) naganchun 2024. 5. 3. 03:53

3,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 이야기(8-2/8)

 

 

2) 다윈을 도운 사람들 은사, 우인, 그리고 라이벌

 

 

다윈은 <인간의 가치를 적확하게 측정하는 하나는 우인관계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처음부터 학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던 그가 후에 자연과학계를 흔드는 이론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은 여러 가지  만남에 이끌린 결과이다.

 

먼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을 무렵 그의 인생을 크게 방향 전환시킨 인물이 식물학자인 존 헨슬로이다. 헨슬로의 학자로서의 평판을 들은 다윈은 그가 개최하고 있던 모임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신학생으로서 필수과목이 아닌 헨슬로의 연수여행에도 거의 매일 참가하였다. <헨슬로와 걷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후에 헨슬로는 비글호에 의한 남미대륙 탐험 항해에 조사원으로 참가하기를 추천받았으나 그는 조사원으로서의 자리를 사퇴하고 대신에 자신이 자만하는 학생인 다윈을 추천하였다. 이리하여 다윈은 비글호 항해가 실현되게 되었다.

 

그리고 항해 후 헨슬로의 협력으로 과학자로서의 위치를 잡으면서 종교적인 반향을 두려워하여 구상 중인 진화론을 발표하지 못하고 망서렸었다.

그 때의 심경을 다윈이 <처음으로 살인을 제공하는 것 같은 심경이었다.>고 그 내용을 털어놓은 상대가 헨슬로의 의리의 아들이기도 한 조셉 후카(Sir Joseph Dalton Hooker, 1817-1911, 영국 식물학자)였다.

후카는 <확고한 실증이 없다면 누구에게도 천지창조설을 부정할 자격은 없다.>고 다윈에게 실증을 모으도록 조언했다.

다윈은 후카를 <어떤 때라도 우정을 준 유일한 존재>라고 불렀다.

 

거꾸로 일시는 사이가 좋았었지만 견해의 다름으로 험악해진 상대도 있다.

그 한 사람이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창설자인 리차드 오웬Sir Richard Owen, 1804-1892, 영국의 생물학자, 비교해부학자, 고생물학자, 왕립협회 회원)이다.

한 때는 박학자끼리 협력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자 오웬은 극단의 반 다윈파가 되었다. 생물의 기원에 관한 의견의 상위함은 종교적인 신조에도 관계하기 때문에 다윈은 오웬을 비롯하여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적대시 당하였다.

출처=https://www.news-digest.co.uk/news/features/4707-the-real-charles-darwi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