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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대하여 (1) - 영화 속에서 찾아보는 진실의 순간들

간천(澗泉) naganchun 2016. 3. 7. 11:40

자비에 대하여 (1) - 영화 속에서 찾아보는 진실의 순간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에 한정시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서 체험하는 자비로움, 선함,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배려와는 또 다른 따뜻한 마음씨를 영화의 장면에서 찾아보기를 즐겨하는 편이다.

그 이야기에서 그 대목에서 그 사람의 따뜻한 자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 진실의 순간에 자비가 베풀어지면서 목숨이나 위기의 순간에서 절망의 순간에서 구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순간들을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오늘 소개 할 순간은 이렇다.


1. ‘샬롯 그레이’ 라는 영화가 있다. 케이트 블랑쉐라는 유명한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2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살던 이 아가씨는 공군인 한 청년을 알게 되고 전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게 된다. 어머니가 프랑스인이었던 그녀는 프랑스어를 모국어인 영어 못지 않게 발음을 해서 프랑스 BC 정부 하에 있는 남 프랑스에 침투해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도우면서 독일군의 나쁜 소행을 막으려고 한다. 독일군들이 유태인들을 데려가는 와중에 부모가 먼저 실종이 된 뒤 어린 형제 둘이 남겨진 것을 보고 레지스탕스 일원들이 그 지역의 농가로 대피시켜서 보살피게 된다. 그러나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독일군의 유태인 색출작전에는 당해낼 수가 없게 된다. 유태인들은 속속 기차에 태워져 수송된다. 그 때 이 영국인이지만 프랑스인 행세를 하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는 그녀에게 그 아이들을 구해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자신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독일군들과 프랑스 BC 정부의 압력사이 사이를 뚫고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그 아이들의 엄마가 편지를 써서 주는 것처럼 편지를 써서 이동하는 기차를 따라가면서 그 아이들에게 전해주게 된다. 그 아이들은 기차 안에서 자신의 부모가 어디선가 써 보내 준 용기를 주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그래도 형제가 손을 굳게 잡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 여기서 그 포기하고 아예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 순간에도 어린 유태인소년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자 편지를 타이핑해서 움직이는 기차에 매달리면서 편지를 전해주고자 하는 그 영국여성의 의지가 기억에 남는다. 그 한 가닥의 햇살 같은 자비, 사람을 진정 생각하는 마음씨. 그런 고마움을 영화를 보면서 접하게 되어서 매우 뿌듯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란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을 베풀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2. 두 번째 이야기는 ‘세인트 오브 솔져’라는 제목의 전쟁영화다.

이 영화 역시 2차세계대전 겨울 한 가운데 유렵의 어느 전장이다. 눈 속에 고립된 한 농가에 피신한 미군 소대에 영국군 장교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그는 담배도 있고 전쟁터에서 계속 버티던 젊은 군인들과는 다르게 지금 파견되었기 때문에 물자가 풍부하다. 그 와중에 담배 한 게피 요청하는 미군에게 이 영국군 장교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절대로 주지 않는다. 자신의 담뱃갑 속에 담배가 여우가 있음에도 주지 않는다. 전우애를 전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미군은 “한 모금이라도 피우게 해 달라고” 조르지만 끝내 거절당한다. 정말 인정머리 없다. 그 대목에서 담배가 고픈 미군은 강탈해서 피우거나 할만도 하지만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착해서인지 순순히 포기한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독일군의 공격을 당하고 이 농가에 피해있던 미군들이 다치게 된다. 조금 전의 담배를 피우고 싶어했던 미군은 사경을 헤매고 영국군 장교는 다른 장소로 피신을 하기 위해 서두른다. 영국군 장교는 그때서야 죽어가는 미군을 향해서 후회를 한다. 그 때 담배 한 모금 피우게 하지 못한 것을...


---> 이 영화에서는 성인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군인의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대목은, 그 작은 선의 하나 베풀어도 좋을 그 순간에 무슨 심보로, 나누지 못하고 그리 박대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후회할 일을. 자신이 선을 베풀지 않음에 대해서 엄청난 후회를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을 말이다.

오늘도 작은 선의를 다하자고 생각해본다. 최선이라는 말에 ‘最善’ 이런 한자를 쓰는 이유가 있다. 最先, 가장 우선되어야 할 본질인 것이다.

선, 자비, 흔히 말하는 사랑, 그런 단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현실화되어지는 가?

영화에서는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 그 영화의 ‘꼭지’ 포인트로 되어 감동의 명작이라고 여겨지게 될 것이다. 우리네 삶도 매 순간 작은 선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쉬운 순간이 아닐 것이다. 내가 어렵더라도 자신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순간과 조우했을 때, 그런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마음을 다할 때, 내 삶도 명작이 될 것이다. 2016.3.7.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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