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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사람은 밀접해지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가, 그 진화적인 이유

간천(澗泉) naganchun 2021. 8. 3. 04:17

어째서 사람은 밀접해지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가,

그 진화적인 이유

 

 

어째서 사람은 밀접해지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가

 

사회적 교섭이 뇌의 보수계를 자극, 이타성을 감염 방지로 이어지는가.

 

6월 조디안 씨와 약혼자는 <블랙 라이브스 마타BLM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의 항의활동에 참가하기 위하여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로 향하였다. 도중 옥외 카페에는 식사를 즐기는 손님으로 가득하고 밀위키의 거리도 경찰의 폭력에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다. 모두 타인과의 접촉으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다. 조디안 씨 등 참가자는 자신들의 행위에 위험을 질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도 세계를 석권하고 연일 몇 만 명의 사람과 감염자가 증가하는 가운데는 데모행진이나 식사나 그 밖의 어떤 모임이거나 참가할지 어떨지를 판단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참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중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심각함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편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타인과의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들은 <사회적>임을 그만두지 못한다. 그것은 진화적인 패러독스 때문인지 모른다.

 

뇌에 묻힌 행동

 

아득한 옛날 우리들의 선조인 영장류는 협력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포식자로부터 몸을 지키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집단이 복잡해지면 그에 따라서 선조들의 뇌도 복잡해지고 사회적 교섭에 대하여 보수를 주는 구조가 신경회로 중에 형성되었다.

사회적 교섭은 우리들 선조가 살아남기 위하여 매우 중요했다. 그런 때문에 사람의 뇌는 사회적 교섭에 의존증 상태가 되기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곧 사람과 접하고 싶다는 근원적인 욕구를 넘는 것은 몇 백 년분의 진화적 프로그램에 저항하려고 하는 일과 같다.

<모든 원숭이나 유인원이 그런 것처럼 우리들은 극도로 사회적이다.>라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인류학자 로빈 단버 Robin Ian MacDonald Dunbar 1947628-=영국 인류학자, 진화생물학자. 영장류의 행동 연구 전문) 씨는 말한다.

<우리들은 날마다의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기 위하여 집단 레벨로 협력하고 의지하고 있다.

그것이야 말로 영장류로서 최대의 적응적인진화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런 사회적 교섭에로의 우리들의 의존에 끼어들어서 감염을 넓혀왔다. 그러나 우리들이 진화와 함께 획득한 욕구 속에는 동시에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열쇠도 감추어져 있는지 모른다. 이타성이나 서로 지키려고 하는 욕구이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사회성을 획득했는가?

 

5,200만 년 전 조류를 제외한 공룡은 모두 절멸하고 야형(夜型)인 영장류의 선조들은 서서히 주간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메소닉스(Mesonychia=포유류의 절멸한 계통으로 중형에서 대형의 육식동물이다.)라는 호랑이와 비슷한 포식자가 얼른 거리는 가운데 단독성인 영장류들은 모임으로써 안전을 확보하게 되었다. 시대의 경과와 함께 선조들은 점점 사회성을 강화하여서 식사나 사냥을 함께 할 뿐 아니라 털을 다듬는 것이나 집단으로 아기를 기르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회활동을 취하지 않는 개체는 생존하고 자손을 남김으로써 영장류는 서서히 사회적인 동물로 진화하였다. 현생 사람에게도 이러한 사회행동의 다수가 남아있다.

털 다듬는 것을 예로 들기로 하자. 단바 씨가 <시간 코스트가 높은> 행동이라고 부르듯이 영장류는 하루에 몇 시간이나 털을 서로 다듬는다.

털 다듬는데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그 개체가 집단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유대를 강화하거나 사회적 순위를 유지하는 데 가치가 있다. 유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개체의 생존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예를 들면 침팬지는 보통 털 다듬이를 서로 하는 상대와 식물도 나누는 경향이 있다. 이런 행동은 마음이 좋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메커니즘에 의하여 강화되어 왔다. 털 다듬이로써 아픔을 경감하고 안락함의 효과가 있고 다행하다는 느낌을 가져오는 신경전달물질인 엔도르핀이 방출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특정한 느린 속도로 가볍게 어루만지는 데에 반응하는 <C촉각선유>라는 것이 갖추어져 있다.

어미가 새끼의 털을 만지는 것 같은 행동은 선조들의 털 다듬이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우리들에게는 털을 다듬을 정도로 많은 털은 없다.>고 단바 씨는 설명한다. <그래서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루만지거나 안거나 하는 행동을 진화시킨 것이다.> 선조들의 뇌가 커짐과 동시에 집단의 크기도 커져서 사회가 진화하였다.

그러나 이미 모든 개체끼리가 털 다듬이를 하는 것 같은 시간은 없어졌다. 그래서 단바 씨의 연구에 따르면 그런 행동은 웃는 것, 노래, , 회식, 다시 더 새로운 시대에는 종교적인 의식이나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포함된다. 사회행동에 의하여 방출되는 엔도르핀은 마약과 닮은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의존증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우리들은 친구들과 담화하면서 식사하는 것을 즐기는 것은 이런 뇌 안의 보수계(報酬系)가 활성화되어 몇 번이라도 반복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계는 엔도르핀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엔도르핀을 방출시키는 것이 무엇이거나 도파민도 방출시킨다.>고 단바 씨는 말한다. 도파민은 동기부여나 운동제어를 비롯하여 많은 신경기능에 관계하고 있다. <도파민은 흥분작용이 있고 일정한 레벨에 이르면 의존증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곧 팬데믹이라는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사람들은 사회행동에서 얻어지는 심리적 및 신경화학적인 보수의 중독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공유하는 것은 치유하는 것

 

한편 사람에게는 자원이나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라도 나무에 오르고 있는 새를 가리키며 거기에 눈을 돌리게 하려고 한다. 우리들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것이다.>고 미국 듀크대학 교수로 진화심리학자인 마이켈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1950118, 미국 인지심리학자씨는 말한다.

이런 욕구는 진화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생긴다. 토마셀로 씨가 2014년에 발표한 총설논문에 따르면 사람과 다른 영장류와의 최후의 공통선조가 타 개체와 협력하여 채식하고 있었던 것이 시사된다고 한다. 후에 사람은 식료채집이나 사냥에 참가하지 않는 집단 멤버에게도 식물을 나누어 주게 되었다. 일부의 연구자들은 사람은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토마셀로 씨나 미국 알리조나주립대학 영장류학자인 존 시르크 씨도 그렇다. 사람의 사회에서는 예를 들어서 직접적인 가치가 없어도 식물을 나누거나 노동을 분담하거나 한다. 우리들은 공감에 의하여 동기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의 변화는 생태학적, 환경적 변화에 의하여 식물이 적어지는 것으로 촉진될 가능성이 있다. <협력할 것인가 죽을 것인가 하는 상황이었다.>고 토마셀로 씨는 적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친절한 마음에도 한도가 있다. 씨르쿠 씨와 진화심리학자 베일리 하우스(Bailey House )씨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들은 사회적 또 문화적인 관계를 가지는 타자에 대하여 보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후에 그 사람이 되갚아줄 만한 경우는 더 그렇다. 사람 집단끼리의 경쟁이 심해지면 우리들 선조는 외적이나 외부자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지식을 상대를 골라서 공유하게 되었다. <당신과 나로써 영양(羚羊)을 사냥하려 할 때 내가 창으로 쓸 만한 막대를 가리킨다. 전에도 함께 한 경험이 있으면 당신은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곧 알 것이다.> 토마셀로 씨는 그렇게 말한다. <꼭 당신은 막대를 들고 우리는 곧 걷기 시작할 것이다.> 씨는 집단내의 경험에 기초한 공유의 지식이 사람의 문화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만나기 중독을 고친다.

 

현대의 사람으로서 보수계를 자극하는 사회적 활동이나 체험의 공유를 그만 두는 것은 가장 원시적인 욕구에 항거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토마셀로 씨는 예를 들면 소셜 미디어는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발산시키는 가장 좋은 장이 아닌가 한다. 디지털로 이어지는 것은 실제로 만나는 것과는 같지 않다. 포옹하고 엔도르핀을 분비시키는 것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태고의 선조들이 사회적인 유대를 만들어 온 때와 같은 보수계를 이용할 수는 있다. 화면 넘어서 흉을 보거나 농담을 하거나 하는 것은 친구와 저녁 식사에 나가는 것과 같이 엔도르핀을 방출시켜준다.

사람과 만나는 심리적 의존을 넘는 장애물은 높다. 그러나 그것은 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단바 씨는 말한다.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는 이미 존재하는 유대를 강화하는 데에 구실을 하지만 트위터나 TikTok 등을 이용한 글로벌한 주고받음에 참가하는 것은 친한 사람만의 사회적 집단을 넘은 연결을 짓는 데에도 구실을 한다.

이 위기의 시대 자신의 일상 세계 밖에 있는 사람과 연결되는 것은 자기와 비슷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형성시켜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단바 씨는 말한다. 이런 유대를 만듦으로써 우리들은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소지를 만드는 것이 된다. 우리들이 원시로부터 계승해온 뇌는 새로운 지인을 부외자(部外者)가 아닌 친구로서 인식할 터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공감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진화적으로 짜인 욕구에 항거하고 타자를 지키려고 하는 선택을 용이하게 할는지 모른다.*

REBECCA RENNER사쿠라기 게이코(桜木敬子)

일본어원문=なぜにならずにいられないのかその進化的理由

출처=https://natgeo.nikkeibp.co.jp/atcl/news/20/063000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