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단상/월요단상

생일 맞은 자의 권한으로

간천(澗泉) naganchun 2013. 1. 7. 05:33

 

생일 맞은 자의 권한으로

 

 

 

꼭 들어야 맛인가 보다. 생일 축하 인사말이다.

내 생일은 새로운 해가 시작되고 다섯 번째 날이다. 항상 생일은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처럼 설레기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부담스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Happy birthday, It's your day!

행복한 생일, 이건 너의 날이야! --> 이 메시지는 생일 하루 전에 우편으로 도착한 생일축하 카드에 쓰인 문구다.

보통은 ‘해피버스데이 투유’라는 문구가 흔한데, 너의 날이라니!

놀랍고 새삼 “ 아, 나의 날이구나, 내가 왕이구나!”하고 일깨워준 점이 신선하다.

 

이 카드는 보험회사에서 딱 제 날에 맞게 도착하여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생일축하 인사다.

그리고 이 날, 장을 보러 남편과 함께 슈퍼에 갔는데 남편이 혼자 몰래 어디를 가는 거다. 그래서 따라가 보니 제과점에서 초코케이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달디 단 크림이 가득 얹힌 케이크들만 있고 내가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는 없어서인지 당황하며 대안을 모색하느라 잠시 동작이 멈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끼어들었다.

“우리 합리적으로 합시다, 케이크를 사도 나 혼자 먹고 살만 찌는데, 정 촛불을 켠다면 작은 초코파이 같은 거 하나 간단하게 해서 의식만 치르자.”고 설득시켰다. 그래서 그 제과점에서 막 구워져 나온 빵을 딱 하나 골랐다.

몸통은 메론빵이고 주변에 다리 네 개와 작은 꼬리, 그리고 동그란 머리에 초코칩이 박힌 작은 아기 거북이 같은 귀여운 모양의 빵이다. 아마도 어린아이들을 위해 재미있으라고 만든 빵인 듯했다. 왜 그 빵을 골랐는지는 모른다. 보통 흔히 보는 빵과 달라서 그럴 것이다.

 

그 빵으로 집에 모아두었던 작은 초 하나를 꽂아 축하를 했다. 케이크를 잘라서 나누어 먹는 것처럼 각자 다리에 해당하는 동그란 작은 부분을 먹고 생일 맞은 자는 생일 맞은 자의 권한으로 약간 크고 보기 좋게 구워진 머리 부분의 빵을 더 먹었다.

그냥 식빵 맛이지만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그리고 운동용 장갑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생일 전날 받은 생일 축하 메시지는 내가 매 달 핸드폰 요금을 바치는 통신사에서 보내 온 문자다. 생일 맞은 자를 위해서 몇 통화를 무료로 해준다는 그런 내용이다.

 

진짜 생일날 아침 새벽.

4시경에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 아버지 핸드폰에서 보내진 문자다. 항상 생일에 잊지 않으시고 격려와 사랑의 인사를 주시는 부모님이다. 아빠 엄마 합동으로 보내신 거라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아침에 집에 전화를 드리니 엄마는 나의 생일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엄마 옆구리 찔러서 ‘생일 축하 한다’라고 인사를 받은 셈이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씀드렸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신다. 아람어로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말이라고 한다. 하늘에 계신 분께서 이 인간들의 황당한 세상에 보내져서 얼마나 당혹스러우셨을까. 결국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나는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읽고 뜬금없이 다음과 같이 바꾸어 대입해 보았다.

‘부모님! 부모님! 어찌 나를 이 험난한 세상에 낳으셨습니까!’ (감탄의 느낌)

‘어쩌면 이렇게도 멋진 세상에 낳으셔서 재미나게 해 주시는 것이옵니까! ’

‘감사합니다.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단상 > 월요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아무르 Amour, 2012> 를 보고  (0) 2013.01.21
용기 있는 도전   (0) 2013.01.14
2012년에서 2013년으로   (0) 2012.12.31
나는 선거개표 관람객입니다  (0) 2012.12.24
도깨비감투와 투명망토  (0) 201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