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단상/월요단상

나는 선거개표 관람객입니다

간천(澗泉) naganchun 2012. 12. 24. 05:22

 

나는 선거개표 관람객입니다

 

 

 

18대 대선이 끝났다. 이번 선거에 나는 선거개표 관람객이 되었다.

 

선거라는 것은 수년간의 장기계획에 따라 그 일을 수행하는 역할들이 정해지고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야하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후보로 나서서 당선되기를 바라는 제일선의 선수들이 있다면 그 뒤에서 그들의 모든 것을 위해 준비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정당이 있고 서포터가 있고 각각의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다.

 

선거당일 각 투표장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나 자원봉사자들, 경찰들, 참관인 등 선거투표 당일에만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일에는 다양한 업무분장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주어지거나 배당되는 일도 아니다. 일정 기간 이전에 이미 내정되어 자신이 어느 포지션에서 어떤 일을 담당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고 시간을 할애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에 임하게 될 것이다.

 

일반인으로 선거에 참여하게 되는 일은 투표를 하는 것은 제일 중요한 일이다. 그 일만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관여할 일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투표하고 개표결과에 따라 누가 당선되는지를 알아보는 일까지인 줄만 알았다.

 

선거를 위하여 할당되는 수많은 역할들 중에서 일반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신청하지는 못했지만, 선거 당일에 일반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선거개표를 관람하는 일이다. 선거개표를 감독하거나 참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은 미리 정해진다. 선거관람객이 되는 것은 그와는 다른 일이다. 그저 먼발치서 관람하는 일이다.

 

하지만 선거개표관람객이 되는 것도 웬만한 정성이 없으면 안 된다. 선거관리사무소에 가서 신분증을 제시하여 관람객 패찰을 받아와야 한다. 추운 밤에 개표장으로 가야 한다.

투표마감 후 개표가 시작되는 시청대강당으로 향했다. 캄캄한 밤에 그 길로 향하는 길에는 이리저리 경찰부대가 이동을 한다. 승합차들이 수시로 대강당 앞으로 간다. 연이어 그 봉고차라고 하는 승합차에서는 4명 정도 되는 사람과 함께 개봉된 투표함과 커다란 상자를 든 사람들이 내려서 개표소 입구에 속속 줄을 선다. 투표소별로 빨리 도착한 순으로 줄을 서는 것 같다. 개표소 입구에는 공항검사대처럼 한 팀 씩 들어가서 어떤 검사 절차를 거친다. 명부와 투표함 같은 것을 검사하는 것 같다. 그런 다음에 그 지점에서 투표함을 가지고 갔던 사람들은 밖으로 빠지고 투표함은 개표소가 마련된 강당 안으로 들여지는 것 같다.

 

유리를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니 저 안 대강당에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보았던 것처럼 탁자가 늘어서 있고 이미 개표를 위한 사람들이 의자에 빽빽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개표를 위한 혹은 검수를 위한 지폐 세는 기계 같은 것도 보이고 현황판 같은 것도 보인다.

 

개표관람객은 패찰을 달고 들어가도 강당 안으로는 못 들어간다. 바리케이트 친 구역 밖 문이나 창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구석진 곳에 마련된 문으로 보니 기자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일들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매우 삼엄한 경계의 분위기가 감돌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참관인이나 개표하는 사람들이나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들은 담담하게 일을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차례 경험이 있어서인지 스무스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 같다.

관람객은 몇 명되지 않았다. 관람객이 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관람까지 할 일인가 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 추운 밤에 그것을 현장에서 지켜보느니 생방송을 중계되는 광경을 집에서 보면 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주 작은 별 볼일 없는 일이지만 우리 일행은 마치 무슨 암행어사나 된 것 같은 비장한 기분으로 선거의 한 부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왔다. 일하는 사람들을 관람하고 왔다.

'단상 > 월요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일 맞은 자의 권한으로   (0) 2013.01.07
2012년에서 2013년으로   (0) 2012.12.31
도깨비감투와 투명망토  (0) 2012.12.17
‘영리한 한국 원숭이’의 멸종위기  (0) 2012.12.10
고향 그리워  (0) 2012.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