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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철학 - 빙수와 빙수 가는 기계

간천(澗泉) naganchun 2014. 7. 20. 17:04

사물의 철학 - 빙수와 빙수 가는 기계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빙수 만드는 기계가 있었다. 얼음을 가는 캐릭터 모양의 빙수 기계다. 귀여운 펭귄모양이다. 펭귄 머리에 난 구멍 안으로 얼음을 넣고 머리위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배에서 얼음이 갈아져서 빙수로 만들 수 있는 기계다. 기계라기 보다는 어린이 장난감이다. 귀여운 캐릭터를 보면서 즐겁게 집에서 빙수를 만들어 먹는 재미를 누리는.

 

동생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 빙수 만들기가 지금 생각하니 새롭다. 그립다. 한 명은 위에 난 구멍속으로 얼음을 차례 차례로 투입하고, 한 명은 손잡이를 달고 돌리면서 얼음을 간다. 한 명은 갈아진 얼음이 사방으로 튀어서 녹아버리지 않도록 작은 그릇으로 담는 역할을 한다. 토핑은 함께 해서 함께 먹는다.

 

지금 그 빙수 만드는 펭귄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냉장고에 얼린 얼음이 얼을 새가 없이 아이들이 많았던 우리 집은 몇 그릇 만들지도 못하고 얼음이 동나고 말았었다. 얼음이 어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아이로서는 큰 기다림이었지만 그 얼음을 차례 차례로 구멍 속으로 집어넣고 돌리는 일도 힘든 일이었다. 잘 안돌아간다. 맷돌의 어처구니 같은 역할을 하는 손잡이가 삐꺽거리며 잘 안돌아간다. 왜냐. 아무래도 펭귄 몸 속은 쇠로 된 장치여서 돌려대니 물기가 쇠를 적셔서 마를 틈이 없으니 녹이 슬고 매끄럽게 갈아지지 않았던 것 같다. 펭귄은 우리들 빙수 만들어내느라 몸살을 앓았을 터이다.  곱게 갈린 빙수가 아닌 얼음이 조금 갈린 형태의 작은 알갱이 얼음인 채로 팥을 넣어서 먹었던 기억이지만 그 빙수기계가 고맙다. 그 펭귄빙수기계가 생각난다. 

 

그 펭귄님이 그리워지는 더운 날이다. 요즘 빙수가 난리다. 시내 유명 커피숍의 커피보다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빙수 한 그릇에 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이런 저런 맛난 재료를 듬뿍 넣고 풍성하게 고봉으로 그릇 한 가득 쌓아올려서 푸짐하기도 하고. 덥기에 기꺼이 내 몸에 단것을 허용하게 되는 그런 힘이 있는 음식이 빙수다.

 

요즘 빙수가 난리다. 아니 빙수 값이 난리인가? 빙수의 계절이다. 부드럽게 눈꽃송이처럼 곱게 간 얼음에다 통팥 듬뿍 올리고 인절미 작게 썰어 올리고 수박도 조금 썰어 올리고 복숭아도 조금 썰어 올리고 해서 부모님께 드리고 싶다.

“어휴~! 이 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