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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군대리아 특식'과 노부부의 식판

간천(澗泉) naganchun 2018. 12. 9. 10:42

'군대리아 특식'과  노부부의 식판




직장에 다닐 때 나는 먹보였던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오후가 되면 바로 퇴근 후 저녁이 빨리 왔으면 했었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직장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먹는 것에 집착을 했던 것 같다. 잘 먹어야 힘을 내니까 말이다.


요즘 기업들의 사내 식당을 가보면 잘 차려놓는다. 다양하면서도 푸짐하다. 학생들 급식에서는 식판에 국그릇만 별도로 얹어 놓는다. 일단 그릇의 가짓수가 단출하다. 하지만 어른들 사내 식당에서는 간장 종지, 김치, 밑반찬, 주 메뉴, 밥, 국 등이 별도의 그릇에 담겨서 쟁반에 가지런히 놓이게 된다. 쟁반위에 오르는 그 그릇 종류만 해도 십 여 가지가 되는 것 같다. 그 그릇들을 일일이 세척하는 일도 힘들 것이다.


예전에 어떤 유치원에서 아이들 점심식사 메뉴가 너무 허술해서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계란국에 깍두기가 전부인 그런 식단이었다. 이젠 그런 곳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보기에 식판위에 차가운 김치 조각만이 올라 있는 식판은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학교 급식이나 사내 식당에서 나오는 메뉴는 영양을 고려해서 주 메뉴를 포함 반찬의 가짓수가 약 3-4가지는 될 것이다.


요즘 ‘군대리아’ 라고 하는 메뉴가 등장해서 히트를 친 기업도 있고 편의점에서도 그것을 패러디한 메뉴들이 속속 출시되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알차고 푸짐함이 주요 포인트이다.


최근에 부모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아버지 : 노인 부부 둘이서 식사를 하는 마당이니 삼시 세끼 냉장고에서 꺼냈던 반찬 그릇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가 꺼내기를 반복하지 말고, 귀찮으니까 우리 식판에다가 담아서 먹읍시다.

어머니 : 반대요! 반찬이 없더라도 밥 국 따로 담아서 정갈하게 먹어야죠. 식판에 뭐 얹을 반찬이나 있나요 뭐~~!

식판이라고 해도 그 나누어진 공간에 담을 반찬 가짓수를 댈 수 없다고 하는 어머니.

그릇 설거지하는 수고로움을 좀 덜자!는 아버지. 

 

국과 반찬 한 가지 정도는 어머니가 만들고, 그 사이에 아버지는 냉장고에서 김치그릇을 꺼내고 수저를 놓는다. 가끔 아버지가 설거지를 한다. 식후 커피는 아버지가 만든다. 부두에서 생선을 사오는 날에는 함께 생선 손질을 하고 요리를 한다. 예전 같지 않은 노인의 몸으로 낑낑거리면서 느리게 느리게 정성껏 이루어 나가는 삼시 세끼.  그 수고로움.


나는 재미삼아서 한 번 해보시라고, 스테인레스로 된 식판 2장과 사기로 된 ‘세 칸 나눔 접시’ 하나를 보내 드렸다. 아버지의 구상대로 식판에 담아서 식사를 시도해보는 것과, 엄마의 생각처럼 반찬만 하나의 나눔 접시에 조금씩 담되 국과 밥은 따로 먹는 방법을 한번씩 해보시라는 생각에서다.


부모님은 다 늙은 사람들에게 살림살이만 추가시켜놓았다고 겉으로는 언짢아하시지만, 그냥 놀이 기분으로 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권한다.

그간의 식습관을 이기지 못하고 비록 쓸모없이 바로 퇴장하게 될 ‘식판’과 ‘나눔 접시’ 일지언정, 노부부의 생활에 작지만 소소한 변화와 도전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장난기 호기심 왕성한 아버지는 아마도 시도는 해보았을 것이다. 어머니도 부창부수 흥겹게 따라서 해볼 것이다.


가서 뵐 때마다 겉으로는 더 잘 드셔야 하는데 타박하면서도, 따뜻한 된장국에 따스한 밥, 그리고 간이 되는 작은 반찬 하나면 족하다는 안분지족의 부모님의 생활. 팔십 여년 지속되어 온 ‘소박한 밥상’을 함께 챙기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행복과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도 옆에서 살뜰하게 챙겨드리지 못하는 마음은, 바짝 다가 온 추위처럼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