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며칠 전 조부모님 제삿날이었다. 지금은 추도식으로 모인다.
가족들이 저녁 7시경까지 도착하면 큰 상을 두고 둘러앉아서 예를 갖추고 예배를 드린다.
약 30분간의 예배를 마치면 저녁 식사를 한다.
형제 자매 일가 친족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 날. 함께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살아가면서 우리의 조상의 좋은 모습, 잘 이룩한 모습, 선한 모습 등을 더욱 더 기리고 생각하며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추모를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후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드린다.
제사를 ‘시께’ 라고 했었다.
‘시께’
‘시께먹으러 감수다’
시께는 '제사'라는 뜻이다.
어릴 때, 졸린 눈 비벼가며 저녁 기나긴 시간을 졸며 기다리던 시께의 절차들.
그 땐, 네모난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할머니를 따라 나선 적이 많았다. 할머니 껌 딱지였다. 할머니 따라서 여기저기 친척집에 많이도 방문 했었다. 제사 집으로 가는 길에는 꼭 빵집에 들러서 소보루빵 한 가득, 팥빵 한 가득 담아서 가져갔던 생각이 난다. 집으로 올 때 그 바구니에는 고기며 떡이며 나물 등이 담겨 있다.
우리 집에서 제사를 준비할 때는 이랬다.
어머니는 몇 일 전부터 장을 보신다. 제사 당일에는 숙모님들이 오신다. 어머니가 재료를 준비해 둔 것을 가지고 숙모님이 전도 부치고, 기름떡도 부친다.
기름떡은 동그랗지만 병 꾸껑 처럼 뾰족뾰족 파진 틀로 모양을 떠낸다. 별모양 같지만, 모서리가 더 많은 납작 별사탕 모양의 찹살떡이다. 기름에 노릇하게 지진 다음에 그릇에 차곡 차곡 담으면서 설탕을 뿌린다. 하나씩 하나씩 겹겹이 쌓아가다 보면 기름에 설탕이 녹아서 꿀처럼 된다. 꿀떡이다.
그 떡. 기름떡. 그 때는 흔해서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었는데, 제주 이마트나 하나로마트 간식 코너에서 만들어 파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움’에 사 먹어 보았다. 그 옛날 그 맛이다. 더 맛나다.
제사 음식은 집집마다 조금씩 차림새가 다르겠지만 대동 소이하다.
어머니가 돼지고기와 소고기 적 양념을 하고 꼬치에 꾀어 주시면 후라이팬에서 다시 노릇노릇 굽는다. 그렇게 고기 꼬치가 가득 쌓인다. 생선 종류로도 꼬지를 했던 기억이다. 각 재료마다 양념도 다르다.
생선도 굽는다. 마른 생선의 꼬리와 지느러미가 타거나 머리가 부서지지 않도록 정성껏 뒤집고 고소하게 굽는다.
주로 옥돔이 그 대상이 된다.
묵도 쑨다. 메밀묵이다.
노란 지단을 작고 둥그렇고 얇게 부치면서 그 위에 불린 고사리를 가늘게 찢어서 문양을 새기듯 살포시 얹어놓는다.
과일은 씻어서 물기를 닦아둔다. 국은 소고기무우국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지방을 쓰고 초저녁부터 제삿상을 차려 놓으신다. 청주도 있고 향도 피우고 초도 켜고... 병풍도 그날은 나온다.
그 방은 조용하다. 조상님들이 오셔서 드시라고 문도 살짝 열어둔다. 나는 그 살짝 열린 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진짜 진짜로 영혼들이 오셔서 드시는지, 숟가락이 공중으로 떠오르는지, 젓가락이 어느 음식 위로 가는지 등등 궁금했다.
저녁 어스름부터 친치 분들이 모인다. 남자 어른들, 여자 어른들, 학생들, 아이들, 각각 따로 따로 무리를 지어서 모여 앉아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눈다.
중간 중간 출출해서 이것 저것 먹기도 하지만, 제사가 파하기까지 모두 기다린다.
밤 12시가 되면 구석 구석에서 잠든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절올리라고. 식사하자고.
숭늉그릇에 퇴물이 나오면 부엌에서는 슬슬 상 차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먹고 이야기 나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찾아 주신 친지들 귀가시에 들려드리기 위해서, 음식들을 골고루 골고루 나누어 개별 포장을 한다.
그 시께. 그 제사.
가족들이 모이는 중요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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