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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 악독한 왕비 ‘달기’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10. 5. 7. 10:29

 

요염 악독한 왕비 ‘달기’ 이야기

 

 

 

달기(妲己)는 은(殷)나라 유소<有蘇=지금의 해남(海南) 온현(溫縣)>의 제후 소호(蘇護)의 딸로 빼어난 용모와 몸매를 갖춘 절세의 미인이었다. 소호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은나라 주왕이 막강한 병력을 파견하여 진압하자, 소호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의 딸 달기를 주왕에게 바치고 목숨을 구걸하였다.

고서에서는 달기(妲己)의 미모를 이렇게 형용하고 있다.

“구름처럼 검게 늘어진 머리카락, 살구 같은 얼굴, 복숭아 같은 뺨, 봄 산처럼 옅고 가는 눈썹, 가을 파도처럼 둥근 눈동자, 풍만한 가슴, 가냘픈 허리, 풍성한 엉덩이, 날씬한 다리, 햇빛에 취한 해당화나 비에 젖은 배꽃보다도 아름다워라.”

주왕(紂王)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아홉 마리 소를 뒤로 잡아당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며, 두뇌가 명석하고 달변이며 행동이 기민한 영명한 군주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성격이 포악하였다. 특히 그는 달기를 왕비로 맞은 후부터 그러한 성격이 더욱 심하게 드러나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은 왕조를 파멸시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봉신연의(封神演義)에 의하면

주왕이 여왜묘(女媧廟)에서 참배를 하면서 여왜의 미모에 넋을 잃고 음탕한 마음이 일어 신을 모독하는 시를 지었다. 이에 여왜는 크게 노하여 구미호에게 명하여 주왕을 현혹시켜 그의 조정을 파멸시키고자 하였다. 구미호는 소호가 딸 달기를 주왕에게 바치기 위해 경성 조가(朝歌)로 가는 도중에 달기의 영혼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달기는 비로소 사람을 유혹하는 비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녹대(鹿臺)와 장야음(長夜飮)

주왕은 달기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하여 그 후로 정사를 돌보지 않고 다른 궁녀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달기에게만 정신이 빠져 있었다. 달기는 왕비에 책봉된 후에 주왕이 자기의 미색에 현혹되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먼저 주왕에게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을 새로 지어달라고 요구하였다. 궁궐의 모든 난간과 기둥은 아름다운 마노와 옥으로 장식하게 하였다.

주왕은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하여 경비를 조달하고, 10만 여 명의 장인들을 시켜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를 계속하도록 하였다. 7년이란 세월에 걸쳐 길이 3리(里), 높이 1천 척(尺), 대궁전 100여개, 소궁전 72개에 이르는 호화로운 궁궐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녹대(鹿臺)>이다. 주왕과 달기는 밤낮으로 이 '녹대'에서 꿈같은 세월을 보내며 마음껏 황음유희를 즐겼다. 심지어 그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월일을 잊어버릴 정도였기에 사관은 그것을 <장야음(長夜飮)= 밤새 술 마시며 논다는 뜻)"이라 일컬었다.

 

포락(炮烙)의 형벌

주왕은 선왕들의 법제가 너무 가볍다고 여기고 특별히 대형 청동 인두를 제조하였다. 그리고는 형을 받은 죄수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붉게 달아오른 인두를 자신의 벌거벗은 몸 위에 놓고 지지게 했다.

이렇게 잔혹한 형벌도 달기는 너무 가볍다고 여기고 주왕에게 대형 청동 기둥을 주조하도록 건의하였다. 그리고는 시뻘겋게 타오르는 숯불을 그 아래에 넣고 죄수를 벌거벗은 채로 숯불 위에 서서 붉게 달아오른 청동 기둥을 꽉 붙잡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포락(炮烙)=통째로 굽는다는 뜻>이란 형이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을 보고 달기는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한다.

 

돈분(躉盆)의 형벌

이 '포락'의 형을 즐기는 것도 점차 지겨워지자 달기는 다시 고심 끝에 <돈분(躉盆)>이란 형을 고안해냈다. 그녀는 먼저 주왕에게 녹대 부근에 넓고 깊은 구덩이를 하나 파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수많은 독사와 전갈을 그 안에 집어넣은 다음 죄수들을 발가벗겨서 안으로 밀어 넣게 하였다. 달기는 주왕과 함께 녹대 위에서 주연상을 차려놓고 그 구덩이 안에서 독사와 전갈에 잡아먹히면서 몸부림치는 장면을 구경하기를 즐겼다.

 

주지육림(酒池肉林)

한편 달기는 다시 <돈분> 좌우로 연못을 하나 파달라고 한 다음, 연못을 피하여 왼쪽에는 술지게미를 쌓은 작은 언덕을 만들고 거기에 나무를 심게 했다. 그 나무 위에 고깃덩이를 매달아두고(육림/肉林이라 한다) 오른쪽 연못에는 술을 가득 채워놓고(주지/酒池라 한다) 궁녀와 환관들을 불러 모아서 나체로 씨름을 하게 한 다음, 승자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들어가서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고, 패자는 주왕의 존엄함을 욕되게 했다고 하여 <돈분>에 집어넣었다.

 

비간(比干)의 가슴

3대에 걸친 공신 비간(比干)이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에게 간언을 하자, 주왕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그것을 내가 알아보리라.“ 하고 가슴을 째어 심장을 꺼내어 죽였다 하는데 이에 달기는 주왕에게 자기가 심장병이 들었는데 성현의 심장을 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다 한다.

 

무왕의 방벌과 달기의 죽음

포악한 군주인 주왕을 제후인 주나라 무왕(武王)이 정벌하여 주왕을 부월(斧鉞=도끼)로 처단하고 달기는 정벌군 병사들에게 붙잡혔을 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로, "나에게는 공은 있으되 죄는 없다. 만약 내가 주왕을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이 어찌 은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겠느냐?"라고 외쳤다 한다.

무왕의 군수인 태공망(太公望)은 달기를 끌고 가서 참수를 명했다. 그런데 망나니가 칼을 뽑아 형을 집행하려고 할 때 달기는 돌연히 머리를 돌려 요염한 웃음을 보이자 망나니는 갑자기 넋이 빠져 달기를 멍청히 바라보다 그만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른 망나니들로 바꾸어서 계속 집형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태공망은 달기의 사람 홀리는 술책이 이미 입신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고, 부하의 화살을 꺼내어 직접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그녀의 심장을 향하여 연속해서 세 발을 쏘았다.  이로써 달기는 영원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파란만장했던 은나라의 역사도 종말을 고하고 새로 일어난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달기 죽음에 대한 기록

달기의 죽음에 대해서도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주왕이 '녹대'에서 뛰어내려 분신자살한 후에 달기는 주(周) 무왕(武王)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는 공융(孔融)의 말을 인용하여 주나라 군대가 조가(朝歌)에 진입한 후에 주공(周公)이 달기를 취하여 그의 시녀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주나라 군대가 조가에 진입한 이후에 더 이상 달기를 비방하는 말이 없었다는 것을 하나의 방증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