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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폐월의 미인 ‘초선(貂蟬)’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10. 5. 13. 09:22

 

폐월의 미인 ‘초선(貂蟬)’ 이야기

 

 

 

초선(貂蝉)은 후한 재상인 왕윤(王允(137-192))의 양녀이다.

초선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기록에는 없으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타나는 미녀로서 하도 아름다워서 달마저 초선 앞에서는 부끄러워 스스로를 구름으로 가렸다 하여 폐월(閉月)이라 하였다 한다.

왕윤(王允)은 후한 태원기현(太原祁縣=지금의 산서성) 출신으로 자는 자사(子師)이다.

처음에는 군(郡)의 향리였으나 영제(靈帝) 때 예주자사(豫州刺史)에 임명되었다.

헌제(獻帝)가 즉위하자 다시 사도(司徒)에 임명되었다.

당시에 동탁(董卓?-192)은 소제(少帝)를 폐위시키고 헌제(獻帝)를 옹립하여 정권을 전횡하고 있었다.

동탁은 포악하고 지략에 뛰어나며, 무예에 뛰어나고 완력은 매우 강했다. 마상에서 좌수나 우수로 활을 마음대로 쏘았다.

 장안(長安)으로 천도할 때에는 수도 낙양(洛陽)을 전소시킨 악한이다.

후한의 여러 신하들도 동탁의 비도에 분노했지만 쉽게 손을 쓸 수 없었다.

그 원인은 동탁의 신변에는 언제나 여포(呂布=?-198)라는 당대의 호걸이 시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탁을 암살하려 하기 전에 이 여포에게 당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 여포는 한민족이 아니라 북방 이민족 출신으로 장신에다가 미모의 야성적인 남자였다. 초선도 북방 민족 출신이다.

동탁에게 여포가 있는 한 틈을 낼 수는 없었다.

 

왕윤은 동탁을 없애려면 두 사람의 사이를 이간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자기의 양녀를 중심으로 하여 두 사람의 남자를 손에 넣으려 한 것이다.

처음에는 여포에게 초선을 소개하여 그 미모의 포로로 한 다음 아내를 삼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미모에 반한 여포는 당연히 승낙하였다.

그러나 다음에 초선을 만나러 온 여포는 눈앞에서 초선이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을 배웅해야 했다.

 듣자하니 동탁이 초선의 미모임을 알고 시녀를 삼으려고 마중해 온 것이었다.

물론 왕윤의 책략으로 여포에게는 몰래 동탁에게 초선을 소개한 것이었다.

여포로서는 재미없는 일이지만 동탁을 거스를 수가 없어서 게름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여포는 정원에서 초선이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만날 수가 있었다.

초선은 시치미를 때고 “아아 만나고 싶었습니다.” 말하고 안기었는데 살짝 몸을 피하여 “나는 이미 더러워진 몸이라 당신의 사랑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며 연못으로 뛰어들려 하였다.

당연히 여포는 당황해서 붙잡았다. 그런 모습으로 다시 안았는데 마침 그 때에 동탁이 나타났다.

 

은밀한 만남을 본 동탁은 날카롭게 여포를 꾸짖었다. 기분이 상한 여포는 온 몸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동탁을 죽일 결심을 하였다.

한편 동탁은 초선을 힐문하였다.

“언제부터 여포와 사통하고 있었는가?”하고

이에 초선은 울며불며

“사통이라니요. 어림도 없는 말씀입니다. 그 분이 억지로 나를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한 번은 도망쳐서 몸을 연못으로 던지려 하였는데 힘껏 안기고 말았습니다.”

 

남자란 여자의 눈물에 약한 것이라서 동탁은 여포를 미워하게 되었다.

이전 동탁은 한 때의 분으로 여포에게 단검을 던진 일이 있었는데 용케 피하여 죽음은 면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동탁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동탁의 시녀인 초선과 은밀히 내통한다는 사실이 들어나는 것이 두려워했었는데 마침 동탁을 제거할 뜻을 가진 왕윤과 뜻이 맞아서 192년에 마침내 여포는 동탁을 살해하여 공포정치의 막을 내리게 하였다.

동탁이 죽은 후 초선은 여포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