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와 카르나크의 직선상 열석 이야기
솔즈베리의 스톤헨지
스톤헨지
영국 남부의 솔즈베리(Salisbary)의 잡초가 무성한 황야인 대평원에는 스톤헨지(Stonehenge)라 하는 거석유적이 있다. 그것은 하나가 약 4톤이나 되는 거대한 석주가 마치 아이들이 나무 쌓기를 한 뒤처럼 무작위하게 말발굽 모양(馬蹄形)으로 벌려진 것이다.
이들 거석 기념물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쯤에 만들어진 거석유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는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일까?
11세기에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루만인은 스톤헨지를 브리텐(Britain)섬의 불가사의한 한 가지로 생각했다. 그 후 상상력이 풍부한 한 승려가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았다. 곧 스톤헨지는 싸우다 죽은 브리톤(Britone) 전사의 기념비로서 아일랜드에서 마법을 써서 운반해 와서 만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사람들은 솔즈베리 평원의 거석군을 지날 때에 모르는 사이에 스톤헨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스톤헨지란 <만들어 내려준 돌>이라는 의미로 커다란 입석 위에 옆으로 누워있는 거대한 장방형의 돌이 마치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데서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19세기가 되자 과학적 이유에 근거를 두게 되었다. 21세기의 현재는 다시 컴퓨터를 써서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어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판명된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곧 스톤헨지는 아득한 고대에 치밀하게 계산되어 건조된 천문대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단지 천문대가 아니라 미래의 천체의 운행, 기상 현상마저도 예상할 수 있는 고대 컴퓨터이고 종교적으로도 의식의 일대 중심이 되는 존재였다고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높이가 4m가 넘는 거대한 석주는 보기에는 무작위로 서 있는 것 같으나 조사 결과 이들 석주의 무리는 놀라운 세밀한 계산 위에 배열된 것임이 판명되었다.
말발굽 모양으로 배열된 중앙부의 10개의 석주는 약 7 m 전후로 서있고 두 개씩 대를 이루고 머리에는 횡석이 얹혀 있었다. 그 주위를 조금 작은 4 m 전후의 석주가 환상으로 둘러있다. 그 직경은 114 m이고 그 바깥을 세 개의 환상으로 둘러싼 고리가 있고, 각각에 59개의 구멍이 뚫려있다. 그 구멍은 2개 월 간의 달의 운행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또 말발굽 모양의 열린 방향에는 2개의 석주가 마치 문처럼 세워져서 거기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턱이 되는 거석이 놓여있다. 턱이 되는 돌은 표석이라 한다. 해돋이 때 이 돌을 비추는 순간이 있다고 하면 그 날이야말로 하짓날이다.
다시 이 표석 말고 4개의 기준석이 바깥쪽에 놓여 있어 이것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정확한 장방형이 되는데 이 장방형의 긴 변은 그대로 하지에 가장 가까운 만월이 뜨는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곧 태양의 움직임과 달의 움직임이 오랜 기간을 걸쳐서 관측한 결과 각각의 관측선이 직각으로 교차한다는 것이 판명된 것이다. 북반구상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위치는 1개소밖에 없다.
스톤헨지의 위치는 이런 의미에서 정확하게 계산된 포인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인들이 몇 백 킬로나 떨어진 장소에서 황량한 솔즈베리 평원에 거석을 끌고 온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 내기까지는 몇 백 년이라는 동안에 달과 태양, 혹성 등의 천체의 운행을 철야를 통하여 몇날 며칠을 계속 관측한 것일 것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한발이나 기근, 해충의 이상 발생, 역병의 유행, 바람이나 회오리 등의 천변지이 등에 괴로워했던 고대인들은 이들 삼라만상이 되어가는 일이 달이나 태양의 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매년 반복되는 각각의 움직임의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서로의 관계를 탐색해 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하여 얻어진 지식은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데이터가 되었다. 곧 작물의 씨를 뿌리는 시기, 수확하는 시기, 태풍이나 바람, 조수의 간만 등이 사전에 예상할 수가 있게 되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갈 때의 시기도 예상되었던 것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놀라운 것은 이 고대의 컴퓨터는 몇 백 년 미래의 일식, 월식이 일어날 날을 정확히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것이었다.
스톤 서클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정도 전부터 작게 예상해도 1200년, 40세대나 걸쳐서 완성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재료인 거석은 200 킬로나 떨어진 산에서 캐어낸 블루스톤(Bluestone)이라는 사암(砂巖)이 사용되었고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여기 솔즈베리 평원까지 운반해 왔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선발된 강건한 남자들 수 백 명이 필요했을 것이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이 일에만 1000년 이상 계속되었다고 생각된다.
카르나크의 직선상 열석
프랑스 북부의 브리타니(Brittany)지방에는 카르나크(Carnac)의 거석군이라 하는 불가사의한 유적이 있다. 카르나크의 거석군은 직선상열석(直線狀列石/Arinyuman)으로 메네크(Menec) 지방에는 1099개의 거석이 11열로 이어져있고, 케르마리오(kermario) 지방에 1027개의 거석이 10열로 이어져있고, 케를레스칸(Kerlescan) 지방에 598개의 거석이 13열로 이어져 있다.
직선상 으로 줄지은 모양
카르나크 열석 크기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몇 천개가 있는 것 같은 돌이 수십 열로 정렬하여 직선상에 3 Km나 정열 되어 대서양의 파도가 치는 곳까지 이어져있어서 <돌의 가로수 길>이라고 불리는데 매우 장대하면서도 복잡괴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상공에서는 작게 보이던 석주가 지상에 내려서 가까이에서 보면 제각기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에는 높이가 6 m 무게가 350톤이 넘는 거석까지 있다.
옛날 한 승려는 카르나크의 거석군은 마법으로 돌로 변화시킨 로마 병사의 무리라 했다고 한다.
19세기 이후 연구 결과 카르나크의 직선상 열석군은 천체의 운행을 기록한 고대의 거대한 모눈종이라고 생각되었다. 거석과 거석 사이는 일정한 자로 재어지고 고대의 천체 관측자가 이처럼 달이 뜨는 위치를 기록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달의 주기, 월식의 주기를 예언했다고 한다.
이들 거석군 유적은 현대의 기술을 능가할만한 고대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인이 달과 태양과 멀리 떨어진 천체와의 움직임을 계속 관측한 결과 이들 위대한 기념물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거석유적을 생각할 때에 거석에 담겨진 고대인의 지혜와 한없는 정렬과 낭만이 시공을 초월하여 전해오는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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