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이스타섬의 모아이(돌하루방)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10. 1. 5. 07:29

 

이스타섬의 모아이(돌하루방)이야기

 

 

이스타(Easter)섬이란

 

 

이스타섬은 칠레의 해안에서 3000킬로 서쪽 남태평양상의 화산섬이다. 이 섬의 크기는 주위가 58킬로이고 면적은 180 평방 킬로이다. 제주도(1,832평방킬로)의 10분의 1, 완도(90,2평방 킬로)의 배 정도의 섬이다.

1722년 부활제(easter)날 밤에 네델란드의 해군제독 야고브 로게벤(Jacob Roggeveen 1659~1729)이 남태평양상의 이 작은 섬을 발견했다. 발견한 날이 이스타(부활절) 날이어서 <이스타 섬>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한다.

이 섬에 상륙한 야곱 로게벤의 눈에는 섬은 초원으로 덮여있고 나무가 없으며 주민은 초가나 동굴에서 원시인처럼 살고 있어서 도저히 모아이 같은 것을 건조할 만한 민족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00개가 넘는 모아이였다. 그 앞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하는 원주민의 모습을 보았다 한다.

1774년에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쿠크(James Cook, 1728~1779)도 상륙하고 있다. 쿠크가 본 것은 주민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의 인구는 약 600명 정도였다 한다. 넘어지고 부서진 모아이들이 있었고, 섬의 모아이의 절반 정도만이 겨우 곧게 서 있었다 한다. 그리고 산기슭에는 만들다 버린 모아이가 마치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중지한 것 같은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한다.

18~19세기에 걸쳐 페루 정부의 의뢰를 받은 아일랜드인 죠셉 반(Joseph Byme)이나 타히티(Tahiti)의 프랑스인의 손에 의하여 주민들이 노예로 연행되거나 외부에서 들어온 천연두가 만연되어 주민의 인구는 격감해서 절멸 직전에 까지 이르렀었다.

1872년 당시 도민의 수는 111명이었다. 1888년에 칠레의 영토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무수한 거대석상 모아이

 

이 섬에는 모아이(Moai)라 부르는 실로 불가사의한 석상이 섬 여기저기에 서 있다. 모아이 하나는 평균 5미터 전후, 무게는 4~5톤이다. 그 중에는 거대한 것으로 높이가 20미터 무게가 50톤에 이르는 것도 있다.

약 230개의 모아이는 각각 섬의 사면에 서 있어서 섬 안 쪽을 바라보고 있다. 섬 동부에 있는 사화산 <라노 라라쿠(Rano Raraku)>의 사면에는 잘라내다가 버린 것으로 생각되는 미완성인 것도 있어서 그런 것을 포함하면 1000 개가 넘을 것이다. 이들 석상은 거칠게 깎이어 요철이 심한데 그것은 석기만을 써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모아이는 만들어질 당시에는 좌대에 놓였던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은 만족할 만한 모습인 것은 없고 넘어지거나 땅에 묻히거나 한 채로이다.

머리 위에는 높이 1.5 미터 정도, 직경 2 미터 정도의 붉은 돌 모자를 씌웠던 것 같으나 지금은 모자를 쓴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이상한 석상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이스타섬의 석상에 대해서는 발견 이래 철저히 조사되어 섬의 모든 것이 알려졌는데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특징을 가진 석상은 이 섬을 제외하고 수천 킬로의 지역에 걸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먼저 무슨 목적으로 이 정도로 많은 수의 거대한 석상을 만든 것일까?

그리고 멀리 떨어진 유일한 채석장에서 어떻게 운반한 것일까?

그에 더해서 모아이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도 수수께끼는 남아있다. 모두가 섬 안쪽을 향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리고 왜 석상의 얼굴의 특징이 모두 같은가?

 

제작소에 남은 모아이

 

모아이는 일찍이 이 섬을 지배했던 지배자의 얼굴을 비슷하게 만든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가정하면 석상이 가지는 특징은 이 섬의 원주민의 얼굴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석상은 어느 것이나 귀가 크고 길쭉한 얼굴로 이마는 까지고 턱은 돌출한 모습이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표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약 200개 정도의 모아이가 어떤 사태를 당한 것인지 돌연 작업이 중지되어 채석장에 버려진 것일까?

 

 

                                                                             모자를 쓴 모아이

 

 

없어진 무(Mu) 대륙의 일부라는 설

 

이 섬은 일찍이 함몰한 거대대륙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설이 생각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챠츠워드(Churchward)라는 영국인으로 그에 의하면 5만년이나 옛날 중부 태평양에 무(Mu)라는 거대한 대륙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무는 6400만 명의 인구로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광대한 대륙에는 본 일이 없는 생물이 많이 있었다. 이상한 날개를 가진 나비나 기묘한 모습을 한 곤충이 많이 살았었다. 대륙의 이르는 곳마다에 있는 광대한 초원에는 절멸했을 고대의 코끼리가 떼를 지어서 이동하고 상공에는 이것 또한 들어본 일이 없는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기묘한 새가 많았다. 전혀 이것은 수수께끼의 낙원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무인은 고도의 건축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제국의 중심부에는 커다란 석조 신전이 무수히 건축되었었다. 여기저기에 거대한 석상이나 유적이 세워졌었다. 거미줄처럼 쳐진 도로는 제국 내에 사방팔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들 도로에는 박석이 깔려 있는데 그것은 틈 없이 빽빽이 만들어져서 풀 한포기 나지 않았다.

그러나 무제국은 그 절정기라 할 만한 때에 돌연 멸망의 운명을 맞았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화산은 폭발하고 지진이 엄습했다. 많은 도시는 쓰러지고 신전이나 석상은 부서졌다. 높이 수십 미터의 쓰나미가 밀려들어서 6400만 명의 주민과 셀 수 없는 동식물이 다 죽었다. 무 대륙은 나락의 바다 속으로 잠겨 사라지고 말았다.

이 대륙이 잠긴 후 약간의 용암추의 작은 섬이 몇 개가 남아서 일찍이 거석문명의 잔재가 남게 되었다. 이스타섬이 그 하나라는 것이다.

 

외게인 비래설=조인전설

 

한편 이 섬에는 아직도 조인전설(鳥人傳說)이라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그 옛날 하늘로부터 조인의 떼가 날아왔다고 한다. 조인들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써서 몇 톤이나 되는 거석을 자유자재로 운반했다고 한다. 또 모아이 스스로가 걸어서 갔다고도 한다. 그리고서 어느 날 조인들은 사라져버리고 거석상만 버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말해주는 듯 섬 이르는 곳마다 커다란 눈을 가진 하늘을 나는 인간의 조각이 다수 새겨져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문필가이며 우주고고학자인 <데니켄(Daniken,Erich Von)=<미래의 기억>,<별로의 귀환>, <우주인의 수수께끼> 등을 저술함>은 섬에 전해지는 전설은 아득한 옛날 외계인이 날아왔었던 증거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사고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시착한 그들은 인류가 언제 우주로 진출할 때에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섬의 땅 속 깊이 그들의 기록을 보존하고 표식이 되도록 거석상을 섬 주위에 배치하였다고 한다.

모아이가 한정된 하늘의 방향을 향하여 있는 것은 외계인이 어느 별에서 날아 왔는 지를 알리기 위한 것으로 그 때에 몇 십 톤이나 되는 거석을 운반하기 위하여 중력을 상쇄하는 기술이 이용된 것이라 한다. 이런 사실이 조인전설을 낳은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데니켄에 의하면 이스타섬의 모아이도 세계 각지에 남아있는 외계인 비래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한 징크스 퍼즐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일찍이 모아이의 눈에는 백색의 석탄암이 박혀있었다 한다.

 

마라에렝가 왕국 왕자의 표착설

 

이 모아이를 만든 이스타섬의 주민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유래라고 생각되는 오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옛날 이스타섬의 동쪽에는 마라에렝가(Maraerenga)라는 광대한 나라가 있었다. 국왕이 죽자 두 왕자가 왕위를 다투다가 코(Coe)라는 왕자가 승리하고 패자인 마토아(Matoa)왕자는 일족과 함께 대형 카누 2척으로 나누어 타서 새로운 신천지를 목표로 서쪽으로 여행을 했다. 긴 항해 끝에 닿은 곳이 오늘 날의 이스타섬이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노루웨이의 인류학자이며 탐험가인 <헤이에르달(Thor Heyerdahl 1914~2002)>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1947년 그와 5명의 친구는 <콘티키(Kon-Tiki)호라는 떼배를 건조하고 그 배를 타서 리마항을 출항하여 약 8600킬로를 101일간 표류하여 도착한 것이다.

그의 설에 따르면 이스타섬은 페루로부터 온 이민이고 거석문화도 페루의 잉카제국의 기술자와 함께 바다를 건너서 가져온 것이다. 극단으로 귀가 긴 모아이 상의 특징은 페루 인디안 귀족의 풍습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

 

테 랑기 히로아(Te Langhi Hiroa 1880~1951 민족학자)라는 학자에 의하면 인간이 중앙 포리네시아로부터 여기에 와서 바위뿐인 섬 깊숙이 고립된 골짜기에 뿌리를 내렸다 한다.

그는 아일랜드인인 아버지와 마오리족인 어머니 사이의 아들로서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민족학자로서 오래 동안 하와이의 비숍(Bishop)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포리네시아의 역사, 전설, 습관, 사회조직에 대하여 연구하고 1938년에는 <새벽의 바이킹>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한 포리네시아 연구의 권위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말한다. 포리네시아(Polynesia) 마루케사스(MarQuesas) 제도에 누쿠히바(Nukuhiva)라는 섬과 히바오아(Hivaoa)라는 섬이 있다.

마루케사스(MarQuises)도에 표착한 사람들은 이 제도에 자신들의 독특한 문명을 만들어 간다. 히바오아(Hivaoa)에서는 나무나 돌로 훌륭한 조각품울 만들고 누쿠히바(Nukhiva)에서는 돌을 쌓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그 히바(Hiva)에는 호스마스와(Hotsu Matsuwa)라는 추장이 살고 있었다.

그의 동생이 한 아가씨를 사랑하였는데, 이웃 부족 오로이(Oroi)라는 이름을 가진 강력한 추장이 이 아가씨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아가씨는 오로이가 쉬지 않고 이 섬을 일주할 수가 있으면 그에게 시집을 간다고 했다. 오로이는 이 요구를 듣고 달리기 시작하였다.그런데 오로이가 섬을 일주하고 있는 사이에 아가씨는 호스마스와의 동생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격노한 오로이는 호스마스와 일족에게 복수할 것을 선언했다.

오로이의 복수를 두려워한 호스마스의 동생은 아가씨의 다른 6명의 동행자를 데리고 히바를 떠나게 되었다.

얼마 없어 호스마스와 자신도 복수에 불타는 오로이와 세 번이나 싸워 패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주한 곳이 이스타섬이었다.

이때부터 호스마스와는 이스타섬에 군림하게 되었다.

히바의 오로이가 호스마스와의 종복으로 가장하여 이 섬에 상륙하였다. 이윽고 최초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는 호스마스와의 동행자나 아이들을 살해했으나 결국 호스마스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 당시 이 섬에는 4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째는 추장 그룹이고 둘째는 신관이고 셋째는 전사이고 최하는 피지배자 층인 노예였다. 그러나 이 호스마스와도 병이 나서 죽어버렸다. 호스마스와의 장남은 히바에 돌아갔다. 추장인 코쓰우(Ko Tsuu)가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마침 이 무렵에 하나우 에에베(Hanau Eebe)라는 부족이 이 섬에 건너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부족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나우 에에베는 처음에는 동부의 포이케(Poike)반도에 정착했는데 점점 호스마스와 부족을 침략하여 이윽고 전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가 지배하던 시대는 매우 길었다. 이 시대에 모아이가 만들어졌다. 하나우 에에베는 가혹하리만큼 모아이 만드는 데에 도민을 혹사했다.

전설에는 하나우 에에베가 30명의 아이들을 죽여서 이것을 먹었을 때 피지배자 계급이었던 하나우 모모코(Hanau Momoko)족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양부족 간에 격렬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후에 전해지는 <모아이 쓰러뜨리기> 전쟁이다.

마침내 하나우 모모코족은 하나와 에에베족에게 승리한 것이다.

하나우 모모코족은 승리 후에도 모아이를 계속 쓰러뜨렸다. 왜냐 하면 모아이 상은 자신들을 지배한 역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이스타섬에는 문자가 존재하지만 페루에는 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타섬에는 석판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67매 존재하고 있는데 아직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석판에 적혀있는 말이 <롱고롱고>인데 롱고롱고(rongorongo)라는 말(語)은 이스타섬 사람들이 남겨 놓은 그림문자군을 가리키는 현대의 총칭이다. 이스타섬 토착어인 <라바누이(Rapa Nui) 어>로 <암송, 낭독, 영창>이라는 의미이다. 롱고롱고의 본래의 호칭은 <코하우 모투 모 롱고롱고(kohau motu mo rongorongo)=영창을 위하여 새겨진 선)인데 약해서 <코하우 모투 롱고롱고>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롱고롱고>를 적은 24개의 나무 조각(문자판)이 19세기 후반에 수집되었는데, 풍우로 인한 손상이나 파손 소실부분이 있는 것도 많았다. 이것들은 현재 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분산되어 있고, 이스타섬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롱고롱고>를 적은 목판은 유목이나 크기 형식이 여러 가지로 그 중에는 이스타섬의 수장의 지팡이나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조인신앙에 바탕을 둔 전통의식(어떤 종류의 경기)에서의 승자(탕가타 마루/tanggata maru=조인이라 일컬어진다)의 작은 상, 전통적인 여성용의 초생달 모양의 장식품(레이미로/reimiro)에 적은 것도 있다. 또 <롱고롱고>의 단문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바위 혹은 벽면의 조각도 발견된다. 구전에 의한 전승은 소수의 에리트만이 <롱고롱고>를 쓸 수가 있어서 이들 문자판은 신성시 여겼었다.

이들 석판에는 이 섬에 관련한 역사나 종교의식에 관한 시가가 그려져 있는 것 같다. 19세기에 섬에는 1000명이 넘는 주민이 노예로 연행해버린 후 그 가운데 소수의 해독자가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강제노동에 의하여 그 해독할 수 있는 인간도 죽어버려서 석판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읽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 후 섬에는 천연두가 만연하여 주민 거의가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상형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한 모아이의 그 수많은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