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올메카>문명 이야기
<올메카> 문명의 탄생지
중앙아메리카 유카탄반도(Yucatan Peninsula)와 멕시코반도 사이에 끼인 베라크루즈(Veracruz)주에서 타바스코(Tabasco)주에 걸친 습지대에는 열대우림이 울창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녹색 지옥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연간 우량이 3000밀리에 달하고 연중 고온다습하여 모든 것은 곧 썩어버린다. 물이 담긴 강이나 밀림 속의 늪에는 수많은 모기가 날아다니고 이르는 곳마다 거머리, 등애, 지네 등 독충이 득실거려 사람이 접근하기 무서운 곳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랜 문명
인두상
의외로 이 지역이야말로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발상지라는 것이 최근의 조사에 의하여 알려졌다.
1862년 멕시코 남서부 유카탄반도 가까운 밀림에서 한 농부가 높이 1.5미터, 무게 8톤 정도의 거대한 인두상(人頭像)을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이 지역에 거대한 인두의 석상이 다수 발견된다는 보고가 있다. 이 보고에 따라 70년 정도 전에 아메리카국립박물관의 스타링 박사(Dr Stering)는 이 지역을 탐사했는데, 어김없이 과거의 보고와 같이 거대한 석두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발견된 거석인두상은 높이가 2미터 정도 무게가 10톤 정도인 현무암으로 조각된 거대한 인간의 두부의 조각상이었다. 그것은 정글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차례차례로 거석인두상이 밀림 안에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두상은 16 개로 큰 것은 무게가 40톤이 넘는 것도 있다.
이들 거석인두상의 표정은 각각 다르지만 어느 것이나 깊이 새겨졌고 두터운 입술에 넓적한 코, 큰 눈 그리고 머리에는 헬멧 같은 것을 쓰고 그 좌우에는 띠를 두르고 중앙에는 이름표 같은 그림문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그 풍모의 특징으로 봐서 이전에 아프리카하고 교류가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으나, 현재로서는 그 거석인두상은 올메카 역대 군주의 초상이 아닌가 하는 설이 유력하다
아무튼 최대의 발견은 타바스코주 연안의 라벤다(La Vender)라는 섬에서 발견된 대량의 유적이었다. 그 안에는 4 개의 거석 인두상을 비롯하여 높이가 31미터가 되는 피라미드, 기묘한 부조로 장식된 제단 등이 있었다. 땅 속에서는 가지가지의 조각품이나 초록색 석반으로 쌓은 상(床)이 3개 발견되었다. 그것들은 재규어의 얼굴을 도안화한 것 같은 모양으로 줄지어 있었다.
이 기묘한 문명은 그 지방사람 인디오에 의하여 <오루만(Oruman) (고무의 나라/country of rubber)>이라 칭하는 지역이라는 데에서 <올메카(Olmeca)> 문명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올메카>란 <고무의 땅 사람>라는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제단
지금까지는 마야문명이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생각했었으나 방사성탄소에 의한 연대 측정에서 이들은 기원전 1천년 정도 전의 유적임을 알았다. 이렇게 유카탄 반도에서 번영을 자랑했던 마야문명에 더 앞서기 실로 1500년도 전에 독자적인 문명이 중남아메리카에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것은 <라 벤다>섬은 면적이 5평방킬로미터의 극히 작은 섬으로 여기는 모래와 점토 밖에 없다. 거대한 인두상 재료가 되는 거석은 산출되지 않는다. 게디가 태고부터 사람이 살았었다는 흔적도 없다. 살려고 해도 화전만으로는 참으로 몇 가족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면적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이곳은 제사 센터였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거대한 조각상의 재료가 되는 현무암은 130킬로나 떨어진 트스토라(Tsusutora)산에서 잘라내어 가까운 강까지 끌고 간 후 뗏목으로 하여 실어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석기와 인력밖에 없던 시대에 무게가 50톤이나 되는 경질의 현무암 거석을 잘라내어 <라 벤다>섬까지 운반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대사업이었을 것이다.
이 성스러운 장소에는 한정된 신관만이 살고 있었다. <라 벤다>의 신관은 여기에 주거를 잡고 생활했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광대한 지역의 주민에 의하여 가져오는 식료나 가지가지의 공납품을 받은 그들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마음껏 입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이다. 올메카인은 그러한 생활을 반란도 없이 실로 몇 백 년이나 계속했던 것이다.
재규어 숭배의 신앙
이 문명의 특징은 <재규어>숭배에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발굴된 여러 조각류는 재규어의 사실적인 것을 표현한 것이 있고 일부 특징을 강조한 것 다시 인간과 재규어의 특징을 믹스한 것 같은 상 등 재규어를 테마로 한 것이 이르는 곳마다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속속 발견되는 토우나 석상의 표정, 눈과 입술에 재규어의 특징이 보인다. 올메카 조각의 독자성을 말해주고 있다. 거석 인두상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얼굴 모습도 재규어와 인간을 융합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설도 있을 정도이다. 재규어를 표현한 조각류, 사실적인 것에서부터 이미지적인 것까지 있다.
재규어는 중남미에서는 최대최강의 고양이과 맹수이다. 아마도 정글 어둠속에 눈을 밝게 뜨고 기분 나쁘게 소리를 지르는 야행성인 이 맹수에 올메카인들은 공포와 외경의 염에서 밀림의 주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본 것일 것이다. 확실히 정글 속에서 살던 그들로서는 힘세고, 약동감 있고, 고양이과 특유의 민첩성을 갖춘 재규어는 신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초자연적인 존재로 생각했던 것일 것이다.
<올메카>문명의 영향
그들은 밀림의 맹수 재규어를 수호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리고 재규어 숭배는 도테미슴이라는 중남아메리카 최초의 원시종교에까지 성장하고 미술이나 공예에 영향을 끼쳐서 올메카 독자의 문명의 근저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이 중남아메리카 최고의 문명은 각지로 영향을 끼쳤다. <라 벤다>에서 남서로 320킬로미터 떨어진 <몬데 알반(Monte Alban)> 유적에는 역시 재규어 숭배가 뿌리 깊게 발견되고 있다.
여기서는 기원전 5백 년 전에 신전이 만들어졌다. 그 지하에는 올메카 양식의 석판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다시 서쪽으로 500킬로 들어간 멕시코분지에도 올메카 문명의 영향이 보인다. 적어도 기원전 500년 전에는 올메카 양식의 피라미드가 구축되고 이윽고 고대 아메리카 최대의 하나인 테오티와칸(Teotihuacan)문명을 낳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 문명은 태양의 피라미드나 달의 피라미드, 케츠알코아틀(Quetzalcoatl)의 신전을 만들고 실로 1천년 이상 긴 세월에 걸쳐 강세를 자랑했다. 그러나 기원 7세기에 치치메카(Chichimecas)족의 파상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그 후 얼마의 변천을 거쳐 테오티와칸(Teotihuacan)문명은 야만족의 피를 이은 아스테카족에게로 이어져간다.
또 올메카문명은 동쪽의 유카탄반도에서 탄생한 마야문명에도 영향을 끼친 것을 알고 있다. 마야문명은 올메카족이 생각해낸 제사 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회를 극도로 발전시킨 것이다. 또 복잡한 마야의 회화문자는 올메카의 문자가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올메카문명은 테오티와칸이나 마야 문명, 다시 그 후의 아스테카문명에까지 중남미에 번영한 여러 문명의 모체가 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올메카문명은 그 진상을 확실히 하지 못한 채로 역사의 표면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올메카인이란 어떤 민족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수수께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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