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 화
Ⅺ. 진인(眞人) 이야기
제94화. 묘고야산의 신인(내편 소요유)
제95화. 아는 것과 모르는 것(내편 제물론)
제96화. 설결이 포의자를 만나다.(내편 응제왕)
제97화. 진인은 도를 스승 삼고 도와 하나가 된다 (내편 대종사)
제98화. 사람의 살림살이를 비웃다 (내편 소요유)
제99화. 원풍(苑風)이 순망(諄芒)에게 물었다(외편 천지)
장자는 인간이 아무 것에도 구속당함이 없이 자유로운 자기의 삶을 가지고 참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진지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진지란 도 곧 실재 세계의 진상에 대한 근원적인 자각을 말하고, 깨달음을 말한다. 곧 도에 대하여 진지 곧 깨달음을 가지고 참 의미로서의 인간을 진인(眞人)이라 한다.
진인은 인간 중에서 최고 지상의 인간이므로 지인(至人)이라고도 하고 신인(神人) 성인(聖人)이라고도 한다. 신인이란 인간을 초월한 인간이라는 뜻이 있으며, 지인이라든지 진인의 초월적인 성격을 강조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성인이란 최고의 예지를 가진 지배자라는 뜻이 있으며 진인 지인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강조할 때 주로 쓰인다.
이처럼《장자》에 나타나는 진인은 그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이제부터 진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제94화. 묘고야산(藐姑射山)의 신인(내편 소요유)
일중시(日中始)의 제자인 견오(肩吾)가 가르침을 받고자 광접여(狂接輿)를 찾아뵈었다. 광접여는 반가운 듯이 맞이하며 견오에게 “일중시는 어떻게 가르치더냐?” 하고 물었다.
견오는 대답하여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은 ‘임금 된 사람은 인의예악을 솔선수범하여 사회질서를 바로잡아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백성들의 추앙을 받아 천하를 다스려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광접여는 실망한 듯이 말하였다.
“그 인의예악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덕에 지나지 않은 것인데, 그것으로 천하를 다스리려 하는 것은 걸어서 바다를 건너고, 끌로 내를 파며, 모기 등에 산을 짊어지우려는 것과 같다. 성인은 외면적인 제도나 법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려고 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천성을 제대로 키워서 백성들에게도 각각 자신에 맞는 생활을 하게 한다. 성인의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저 새를 보라.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물이나 화살의 위험을 피하고 있다. 또 생쥐는 신단 구석 깊숙이 집을 지어 불을 피우거나 파내는 화를 피해서 몸을 편안히 지키고 있다. 새나 쥐들마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 살 길을 다 알고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공연한 참견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내편 응제왕)
성인의 정치란 무위자연의 도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으로 인위로서 참견을 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묘고야산에 사는 신인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견오는 매우 황당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견오(肩吾)는 진인인 광접여(狂接輿)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하는 듯이 현인인 연숙(連叔)에게 말하였다.
“묘고야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얼음이나 눈 같이 희고, 부드럽고 곱기는 처녀와 같으며, 오곡은 먹지 않고 바람이나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나는 용을 몰아서 사해의 바깥을 노닐고 있다 하네. 그리고 그 정신이 엉김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모진 병에 걸리지 않게 하고, 또 곡식도 풍년이 되게 한다네. 나는 그 말이 속이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네.”(내편 소요유)
살갗이 곱기가 눈이나 얼음 같고, 게다가 부드러워서 마치 처녀와 같이 아름답다. 더구나 그 사람은 오곡은 먹지 아니하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몰아서 사해의 밖에서 노닌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들 보통 사람들이 걱정하는 먹는 것 입는 것 같은 살림살이로부터 완전히 초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상향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거기서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물론 인생 최대의 행복일는지 모르겠다.
연숙이 이 말을 받아서 말하였다.
“장님은 색채를 보는 데 상관이 없고, 귀머거리는 음악을 듣는 데 상관이 없는 법이다. 어찌 우리의 형체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다고 할 것인가? 우리의 지(정신)에도 또한 그것이 있다고 했으니, 아마 그 말은 자네를 두고 한 말인 것 같군 그래. 그 신인의 그 덕은 장차 만물을 한 덩어리로 뭉칠 것이네. 온 세상이 그의 다스림을 바란다 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일거리로 삼을 것인가? 천하의 아무 것도 그를 해치지는 못할 것일세. 큰물이 나서 하늘에 닿아도 그는 빠지지 않을 것이요, 큰 가물에 쇠나 돌이 녹고 흙이나 산이 타더라도 그는 뜨거워하지 않을 것일세. 이렇게 그는 남은 찌꺼기나 티끌이나 때를 가지고라도 요․순쯤은 만들어낼 것이니, 어찌 그가 세상일을 일거리로 삼아 즐거워할 것인가?”(내편 소요유)
“요(堯)는 선정을 베풀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었으므로 하루는 의기양양하게 묘고야산 속에 살고 있는 네 사람의 신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요는 거꾸로 신인들에게 압도되어 서울 교외에 있는 분수(汾水) 가에 돌아와서도 정신이 멍한 채 세상일을 아득히 잊고 있을 따름이었다.(내편 소요유)
어느 날 요임금은 선정을 베풀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었으므로 득의연한 마음에서 묘고야산에 살고 있던 허유(許由)라든지 설결(齧缺)이라든지 왕예(王倪)라든지 피의(被衣)라 하는 신인들을 찾아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천자를 자임하는 요임금도 그들과 만나보니 종래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던 수신(修身)이라든지 제가(齊家)라든지 치국(治國)이라든지 평천하(平天下)라든지 하는 일이 너무나도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저 망연자실했다고 하는 말이다. 이른바 은자 이상의 신선이 본다면, 요임금쯤은 한층 쓸데없이 보이는 것이다. 장자는 그들 신인(神人)을 칭찬하여 신인은 홍수가 나도 빠지지 않는다. 쇠나 돌을 녹일 정도의 열에도 뜨거워하지 않는다. 이런 신인이 나타나면, 그 사람의 때나 먼지나 쭉정이와 겨로도 요임금이나 순임금쯤은 만들어낼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장자는 이 이야기로써 이 세상에서 성천자로 추앙을 받고 있는 위대한 요임금이나 순임금도 신인에 견줄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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