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혜시의 궤변을 비판하다(잡편 서무귀)
장자가 혜시에게 물었다.
“활을 쏘는 사람이 미리 기약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맞혔다고 하자. 만일 이 사람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고 하면, 천하에는 모두 예(羿)와 같은 활쏘기의 명인들뿐일 것이니, 그래도 옳은가?”
혜시가 “옳지.” 하고 대답했다.
이에 장가가 말하였다.
“천하에는 모두가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없는데, 제각기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천하에는 모두 요(堯)뿐일 것이니 그래도 옳겠는가?”
혜시는 또다시 “옳지.”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자는 또다시 질문을 하였다.
“그러면 저 유가(儒家), 묵가(墨家), 양주(楊朱), 공손룡(公孫龍)의 네 학파에다가 자네를 보태어 다섯 학파가 되는데, 그러면 그 중에서 과연 어느 학파가 옳은 것인가?”
이 말에 대하여 혜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자는 비유를 들어 장광설로 혜시를 비판한다.
“혹시 자네가 자신의 주장만이 절대로 옳다고 주장한다면, 저 노거(魯遽)란 사람의 말과 같은 것이 아닌가? 노거의 제자가 노거에게 말하기를 ‘나는 선생의 도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겨울에도 불을 쓰지 않고 솥에 밥을 짓고, 여름에도 얼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을 때 노거는 ‘그것은 다만 양으로써 양을 부르고 음으로써 음을 부른 것뿐이다. 내가 말한 도는 아니다. 내가 너에게 도를 일러주리라.’ 하고 두 개의 비파를 가지고 나와서 줄을 고루고, 한 개는 정침에 두고 한 개는 방안에 두었다. 그리고 자기는 방안의 비파를 퉁기어 궁(宮=오음의 첫째 소리) 소리를 내면 정침에 있는 비파도 궁 소리를 따라 내고, 각(角=오음의 셋째 소리) 소리를 치면 정침의 비파도 각 소리를 따라 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두개의 비파의 음률이 같아서 서로 응했을 뿐으로 아무런 이상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만일 한 줄의 가락을 고쳐 버린다면 그것은 오음 곧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에 있어서 하나도 맞지 않을 것이요, 그래서 또 그것을 치면 이십 오 현은 모두 어지러워 바른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원래 그 소리(오음)에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거기에는 주되는 소리가 있어서 다른 소리는 따라서 응한 것뿐이다. 그러면 자네나 다른 네 학파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이 이야기는 노거(魯遽)라는 사람의 재주는 훌륭하나, 음을 가지고 음을 불러내었다는 점에서는 그 제자가 양을 가지고 양을 음을 가지고 음을 불렀다는 점과 같은 것으로 결코 본질적인 차원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혜시가 다른 학파보다도 자기 학파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는 것은 노거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혜시가 말하였다.
“이제 유(儒), 묵(墨), 양(楊) 병(秉=공손룡)의 네 학파는 지금 한창 나하고 변론을 하고 있는데, 말로써 서로 싸우고, 이름으로써 나를 항복 받으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나를 그르다고 하여 지우지 못했는데. 그래 어떤가?”
그러자 장자는 말하였다.
“제(齊)나라 사람으로 그 아들을 억지로 송(宋)나라로 팔아넘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문지기를 시키기 위하여 무참히 아들의 발을 잘라 불구자로 만들었다. 이런 사람도 악기를 사서는 부수어지지 않게 잘 싸서 묶는다. 또 집을 나간 자식을 찾을 때에 한 걸음도 먼 지경까지 나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 말은 혜시가 도를 버리고 변론을 중히 여기는 것은 마치 자식을 버리고 악기를 중히 여기는 것과 같으며, 변론보다도 귀중히 여겨야 할 자기 자신의 생명의 충일함을 무시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 아닌가 하고 혜시의 궤변을 중시함을 비판하는 말이다.
“또 초(楚)나라 사람으로 발이 잘리어 문지기로 팔려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밤중 아무도 없을 때에 몰래 도망가려고 나룻가에 나가서 뱃사공과 싸움을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중이니까 남에게서 비난을 받지는 않았으나 싸움을 한 당사자 두 사람은 아직 배가 강기슭을 떠나기도 전에 벌써 원수를 맺게 되는 것이다.”(잡편 서무귀)
이 말은 다른 학파에서 비난을 하지 않는다고 혜시 자신이 자기의 약점을 모르고, 다른 학파와 싸우는 것은 마치 밤중에 도망치려다 싸움을 한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도가의 고전 > 장자 이야기 백 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93화. 상대할 사람이 없으니 할 말도 없다 (잡편 서무귀) (0) | 2010.01.07 |
---|---|
제92화. 나이와 더불어 새로이 살다(잡편 측양) (0) | 2010.01.05 |
제90화. 가죽나무와 들소(내편 소요유) (0) | 2010.01.03 |
제89화. 큰 박은 쓸모가 없다(내편 소요유) (0) | 2010.01.01 |
제54화.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이냐(외편 지북유) (0) | 2009.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