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상대할 사람이 없으니 할 말도 없다 (잡편 서무귀)
장자가 어느 날 장례에 참가했다가 혜시의 무덤을 지나게 되었을 때 그를 따라나선 제자들을 보고 말하였다.
“옛날 초(楚) 나라의 서울 영(郢) 땅에 사는 어떤 사람이 흰 흙을 코끝에다 마치 파리 날개처럼 엷게 바르고는 장석(匠石=묵수의 달인)을 불러 그것을 깎아내라고 했다. 장석이 그 흰 흙을 깎으려고 도끼날을 휘두르는데 바람이 곧 일어날 듯하였다. 그러나 그 영 사람은 태연하게 있었다. 마침내 흰 흙은 깨끗이 깎이었지만 영 사람의 코끝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 사람은 선 채로 얼굴빛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송나라 원군(元君)은 이 말을 듣고 장석을 불러 ‘시험 삼아 내게도 그렇게 해 보라.’ 고 했으나 장석은 ‘나는 이전에는 그것을 훌륭히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상대는 죽은 지 오래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제 부자(夫子=혜시)가 죽고 나니, 나는 다시 상대할 이가 없구나. 나는 다시 더불어 말할 것이 없구나.”(잡편 서무귀) 하고 말했다 한다.
아무리 목수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그 묘기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호흡이 맞는 상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혜시가 죽어서 변론의 적수가 없으니 변론의 묘를 다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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