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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90화. 가죽나무와 들소(내편 소요유)

간천(澗泉) naganchun 2010. 1. 3. 04:47

 

제90화. 가죽나무와 들소(내편 소요유)

 

  다른 날 혜시가 또 장자를 찾아왔다. 그래서 말하기를 “우리 집에는 가죽나무라는 나쁜 나무가 있네. 매우 크기는 큰 나무인데, 혹이 있고, 가지가 꾸부러져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네. 목수에게 보여도 이것을 써주지 아니하네. 요전에 자네의 말을 들으니 마침 그 가죽나무도 그와 같은 것으로 크기는 크지만 전혀 쓸모가 없네.” 하고 말한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장자는 “자네는 눈치가 없는 사나이일세. 저쪽에 삵인가 이리인가가 뛰놀고 있네. 그 모습을 잘 보는 것이 좋겠네. 그들은 영리한 척하여 동서남북으로 뛰어 돌아다니고 있는데, 결국은 자신의 영리함 때문에 인간의 덫에 걸리고 마네. 그들에게 그 영리함과 민첩함이 없었더라면, 인간도 덫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왜 생각해보지 못하였는가. 또 여기에 이우(犛牛)라는 들소가 있네. 몸뚱이는 무장 크지만 쥐 한 마리도 잡을 줄 모른다네. 무능하다 하면 이 이상이 없이 무능하지.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인간으로부터 관대히 취급당하고 있네. 사실 인간은 이 소에게 코뚜레도 하지 않고, 고삐도 매지 않고 들판에 놓아두지 않는가.

 

결국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쓸모 있는 것으로 바뀌는 것일세. 가죽나무가 쓸모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을 넓은 들판에 심어두면 어떤가. 언제까지 가도 이 나무를 베어버릴 사람은 없을 터이니까, 삼복 여름 무더위에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면 그것이야말로 무하유(無何有)의 향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간절히 혜시의 주의 없음을 깨우쳤다고 한다.

 

  여기에 ‘무하유의 향’이라 한 것은 아무 것도 있는 것이 없는 고을 곧 인간의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즐거운 이상향을 말한다. 어느 서구인은 ‘무하유(無何有)의 향’이라는 말을 번역했는데, Erehwon이라 했다. 이 말은 No where를 가꾸로 적은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