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큰 박은 쓸모가 없다(내편 소요유)
어느 날 친구인 혜시(惠施))가 장자를 찾아왔다. 그래서 말하기를 “요전에 위(魏)나라의 왕이 나에게 매우 크게 자라는 박씨를 주었네. 이것을 심었더니 대단히 큰 박이 열렸다네. 그러나 너무나 크기 때문에 물을 담아도, 술을 담아도, 다섯 섬이나 든다고 하니까,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네, 그러니 이것을 깎아내어서 술잔을 만들려고 하니 이것 또한 박의 표면이 너무 커서, 그 일부만을 깎아서는 얕아서 술잔이 안 되네. 이래저래 결국은 쓸모가 없으니까 깨어버리고 말았다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장자는 곧 혜시의 어리석음을 힐책했다. “자네는 큰 것을 쓸 줄을 모르는 인간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옛날 송(宋) 나라에 손이 트는 데 바르는 고약을 만드는 명인이 있었는데, 물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 약을 바르면 손발이 아프지 않으므로 매우 쓸모가 있었네. 그래서 그 사람 집에서는 무명을 표백하는 장사를 시작했네. 그 소문을 듣고서 어느 날 한 사람의 손님이 찾아와서, 백량의 돈을 줄 터이니 당신의 고약 제조법을 물려주지 않겠는가. 돈은 즉시 그 자리에서 드리겠다고 말하므로, 그 사나이는 일족을 모아놓고 의논을 하였네. 우리들이 매일 매일 무명을 표백해도 얼마나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이제 손님이 돈 백 량을 준다고 하니까, 이 기회에 약 제조법을 파는 것이 어쩌겠는가 하고 의논하자, 가족들도 별로 이의가 없으므로, 그 제조법을 팔기로 결정되어 곧 그 손님에게 약을 만드는 방법을 팔았다 하네.
그런데 그 손님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그는 곧 오(吳)나라 왕에게로 가서 이 약의 효능을 설명하기 시작했네. 당시 오나라는 월나라와 전쟁 중이었네.” 원래 오나라와 월나라는 모두 오늘날의 강서성(江西省)으로 황하 가까운 곳이므로 전쟁이라면 대개 수상전이 되고, 수상전이라면 자연 손발이 트는 경우가 많으므로, 손발이 트는 데 쓰는 고약의 유무가 승패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되는 것이다. 장자는 말을 이어서 “전쟁이 한창 벌어지는 가운데 월나라 병사는 손발이 트는 병 때문에 아파서 활이나 화살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하네. 이에 반해서 오나라는 고약을 많이 준비하여 두었으므로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하네. 그러니 오나라가 쉽게 전쟁에서 승리한 것일세.
자 생각해보게. 생각할 것은 여기일세. 같은 손발이 트는 데 쓰는 약을 가지고 있어도, 어리석은 사람은 그저 그것으로 무명을 표백하는 일을 해서 조금의 돈을 버는 것이 고작이지만, 이에 반해서 재주 있게 쓰면, 그것으로 전쟁에서도 이기는 것일세.
모든 물건은 쓰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네. 이제 자네는 다섯 섬이나 들어간다는 커다란 박은 쓸모가 없다고 하지만 그러면 그것으로 커다란 부대를 만들어 호수에 띄워 놀러 가면 어쩌겠는가. 몸은 가라앉지 않고, 바람은 불고,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하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것은 혜시가 쓸 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쓸 모 있는 것을 찾아내라는 말로서 장자의 ‘무용의 용’의 서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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