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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수께끼/역사의 수수께끼

<모헨조다로> 이야기

간천(澗泉) naganchun 2009. 10. 24. 17:46

 

고대 인더스문명의 유적

<모헨조다로> 이야기

 

 

<모헨조다로(Mohenjo-daro)>는 기원전 25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번영했던 고대 인더스문명 최대의 고대도시 유적이다. 1922년에 인더스강 하류에서 커다란 불탑의 일부가 대지에 솟아있는 것이 인도인 라칼다스 (Rakhaldas Bandyopadhyay)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것은 2세기 전후의 대사원의 일부일 것이라 생각하고 1930년대에 이르러 영국인 고고학자 존 마샬(John Marshall)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발굴해 들어감에 따라 그 유적은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거대한 고대도시의 유적임이 판명되고, 십 수 년 간 발굴을 계속하자 이 고대 도시의 모습이 조금씩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견고한 성벽, 정연한 우물정자형의 가로, 완비된 배수시설, 곡물창고, 넓은 목욕장 등등. 이것은 몇 천 년 전에 치밀한 도시계획 하에 건설된 주위 5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 도시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 이 고대도시에는 약 3만이나 되는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 절정기는 기원전 250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다시 이 유적은 그때 이미 발견된 하라파(Harappa) 유적과 모든 면에서 유사했다.

 

<하라파>유적은 인더스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과는 6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그 중간 지점에는 소규모의 유적이 차례차례로 발견되어서 이 두 개의 고대도시는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이 그 후의 조사에서 판명되었다.

우리들은 이것을 고대 인더스문명이라고 한다.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 이 고대도시의 유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사실이 나타난다.

 

첫째 수수께끼

 

<모헨조다로>는 기원전 2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상으로는 청동기 문명으로 분류되는데 시대인데 그 고도의 도시 시스템은 다른 청동기 문명을 훨씬 뛰어 넘어 근대문명에 필적할 만하다.

 

 

언덕배기 성새지구

 

모헨조다로는 크게 두 개의 지구로 나누어졌다. 평지인 시가지와 조금 언덕진 성새(城塞)지구이다. 시가지는 우물정자형의 도로로 구분되고 정연하게 배치되어있다. 거주 지역은 모두가 미리 구획정리 되어있고 거의 모든 주택에 욕실이 갖추어져 있다.

건축 자재도 엄격히 품질이 높은 구운 벽돌이 사용되었다. 현대에도 일부 세계에서는 질이 낮은 햇볕에 말린 벽돌이 쓰이는데 말이다.

도저히 4000년 전의 도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시가지구와 골목 

 

그리고 고대 로마시처럼 수자원의 이용기술은 현대의 수준에 필적한다. 시가지에 있는 700개 정도의 우물이 복잡한 배수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집집마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주택의 2층까지 배수기능을 갖추고 있다. 2층의 수세식 화장실에서 벽속의 토관을 통해서 하수도로 배수 토관이 깔려 있어서 간단한 정화조를 통하여 어느 정도 정화되어서 강물로 배수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시내에 시설된 하수도에는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맨홀까지 설치되고, 각 가정에는 쓰레기를 회수하기 위한 쓰레기 투기장치도 되어 있었다.

 

 

우물(원통형)

 

유럽에서 하수시설이 설비된 것은 파리가 18세기이고 런던이 19세기 중반이라 하며 일본은 제2차 대전 후라고 한다. 현대에도 하수시설이 없는 거주 지역은 세계 여러 곳에 아직도 있다.

 

 

하수도

 

<모헨조다로>는 처음부터 새로운 땅과 완전한 도시의 설계도만을 가지고 1회의 시공으로 건설된 도시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기본적으로 조금씩 사람이 모이고 그 수에 맞추어서 주거와 통로가 단계적으로 추가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 것이 쌓여서 도시가 되고 세계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헨조다로>에는 이러한 시행착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상에 돌연 나타난 역사가 없는 도시가 바로 이 <모헨조다로>이다.

 

둘째 수수께끼

 

유적 여기저기서 이유를 상상할 수 없는 인골이 길가나 우물가 여기저기서 엎드리기도 하고 바로 눕기도 하는 등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서로 엉키어서 묻혀있는 것이다. 발굴 중에 인골이 나타났기 때문에 <죽음의 언덕>이라는 뜻의 <모헨조다로(Mohenjo-daro)>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발굴된 유골은 전부 46구로서 어디서는 14구가 한 덩어리가 되어 있고, 또 다른 곳에는 20구가 또 다른 곳에서는 9구 등 여러 곳에서 작은 구릅으로 발견되었다. 이들은 모두가 두부에 타격을 받아서 손상된 흔적이 있어서. 학살된 흔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어떤 유골에는 길이가 15 센티나 되는 상처가 있고, 9구가 발견된 곳에서는 5구는 어린이인데 그 중에는 목이 잘린 아이도 있었다 한다. 아마도 몇 천 년 전 어느 날 이 일가에 처참한 참극이 일어났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학살의 흔적은 <하라파> 유적에서도 다수 발견된 바가 있다.

발견된 유골은 46구뿐인데 당시 3만 명이나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셋째 수수께끼

 

발굴 당초에는 <모헨조다로>유적의 기원이 기원전 2500년 전후라고 추정했는데 발굴해감에 따라 그 기원은 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서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모헨조다로>의 최하층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수 미터를 파는 정도로도 염분을 함유한 지하수가 뿜어 나와서 발굴을 곤란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헨조다로>는 최초의 생활권이 폐허가 된 다음에 그 위에 새로운 유적이 덮여지고 또 세월이 가서는 또다시 새로운 유적이 덮여지는 등 하여 적어도 나이테처럼 몇 십 개 층이 덮여 쌓여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이 고대도시의 기원은 기원전 4000년에서 5000년 정도라고 추측되는데,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수수께끼

 

<모헨조다로>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언덕배기 성새지구에 있다. 이 지구에는 전망대, 집회장소, 저수지, 곡물창고 등 공공시설이 집중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곡물창고이고 그 옆에 대목욕탕이 있다.

 

 

곡물창고                                                          목욕장

 

이 목욕탕은 세로가 12미터 가로가 7미터 깊이가 2.5미터이다. 저수량은 160톤이나 되기 때문에 그 수압에 견딜 수 있게 3겹의 방수처리를 하였다. 겹겹이 구운 벽돌을 사용했는데 사이에는 천연 아스팔트인 역청을 발라서 방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목욕탕은 무엇으로 썼는가?목욕탕이라면 몸을 씻는 곳인데 깊이가 2.5미터나 되어 사람의 키보다도 깊으니 거기서는 몸을 닦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 사람의 키가 3~4미터나 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거주구의 규모로 봐도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은 아니고 종교적인 의식에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세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이 유적에는 신전이 발견되지 않는데 과연 이 민족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수수께끼이다.

 

다섯째 수수께끼

 

오늘 날 이 문명의 기원마저 수수께끼이지만 어찌하여 이 거대한 문명이 붕괴하여 홀연히 멸망해버린 것일까? 이 또한 수수께끼이다.

 

1),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멸망했다는 설

아리아인이 이곳에 침입한 것은 기원전 1500년경이라 한다. 그런데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한 것이라면 대학살이나 파괴의 흔적이 이르는 곳마다 있을 터인데 겨우 46구의 유골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보다 오랜 지층에서는 유골은커녕 사람이 살았었던 사실로서 증거가 될 만한 유물이나 흔적이 발견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일인가?

<모헨조다로>는 아리아인이 남하해 왔을 무렵에는 이미 붕괴되고 문명으로서의 수명을 끝낸 상태였을 것이다. 그동안은 <모헨조다로>를 비롯한 인더스문명은 강대한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고 했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문명에 치명상을 입힌 것은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2), 기후의 변화가 멸망을 가져왔다는 설

멸망의 원인이라 생각되는 또 하나는 기후의 변화로 인해서였을 것이다. <모헨조다로>의 유적에서는 많은 인장이 출토되었는데 그 인장에는 호랑이, 무소, 코끼리 등 습지대에서 사는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당시에는 우량이 풍부하여 초목이 무성했음을 상상하게 한다.

어느 지리학자는 비를 내리게 한 저기압이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서서히 북상하였기 때문에 인도 서북부는 건조하여 황량한 풍토가 되어버렸다고 주장한다.

 

3). 인위적인 환경 파괴가 멸망을 가져왔다는 설

한편 인위적인 환경파괴가 원인이라고 보기도 한다. 도시건설에 필요한 벽돌을 굽기 위하여 나무를 지나치게 벌채한 때문에 대지의 건조화가 급히 진전되고 기온도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 년이나 벌채를 계속했다면 숲이나 초지는 사라지고 수분은 높은 기온에 의하여 점점 증발하고 지표에는 염분이 지표를 덮게 되므로 식물을 재배할 수 없다. 이처럼 환경이 황량해져서 사람들은 도시를 버리고 떠나게 되었을 것이다.

 

4) 또 하나는 대홍수로 인더스강의 수로가 변한 때문이라는 설

자연환경의 악화의 원인으로서는 대홍수와 인더스강의 수로의 변화를 들고 있다.

<모헨조다로>의 유적에도 과거에 대규모 홍수에 휩싸였던 흔적이 적어도 3회 정도이상 있었다. 유적에 남은 70센티에 이르는 두꺼운 퇴적토는 홍수 뒤에도 물이 빠지지 않고 오래 동안 고여 있었음을 의미한다. 곧 대홍수가 이 문명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 것이다.

 

5) 인더스강의 수로가 변화여 모헨조다로가 강에서 멀어진 때문이라는 설

이 광대한 강은 종종 범람하여 다음에는 어느 쪽으로 흐를 것인지 모를 정도로 불안전한 강으로 알려져 있었다. 20년 통계를 보아도 이렇게도 제 마음대로 변해버리는가 할 정도이다.

현재 인더스강에서 <모헨조다로>는 가장 가까운 거리가 5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상류인 <하라파>는 당시의 오랜 하상이 남아있고 그에 따르면 강의 수로가 10 킬로나 북쪽으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수원이 멀어졌기 때문에 멸망했다는 말은 <타클라마칸(Taklamakan)> 사막의 누란(樓蘭/Loulan)이나 <미란(美蘭/Miran)>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인더스문명의 하나인 <칼리방간(Kalibangan)>이라는 고대도시도 그것이 원인으로 멸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칼리방간>은 강 곁에 있어서 풍부한 수원의 혜택을 받았으나 지금은 <타르(Thar)>사막의 한 끝으로 반은 묻혀버렸다. 그 가까이는 폭이 3 킬로나 되는 마른 하상이 보일 뿐이다.

 

6) 돌발적인 천재지변이 원인으로 문명이 멸망했다는 설

파키스탄 남부 <신드(Sindh)>지방이나 <마크란(Makran)>해안 일대는 원래 지각변동이 활발한 곳으로 19세기 초에는 길이 80킬로 폭 24킬로의 지역이 돌연 높이가 4.5미터나 융기한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인더스강이 막혀서 4300평방킬로(제주도의 2배 이상)의 토지가 물에 잠겨서 대참사를 가져온 일이 있다. 2002년에는 <캄베이(Cambay)>만의 40미터 해저에서 9500년 전의 초고대도시의 유적이 발견되는 놀라운 뉴스도 있었다. 이러한 지각변동이나 천재지변이 문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된 것은 확실한 듯하다.

 

7) 검은 유리질의 돌이 지면을 덮고 있다. 핵폭발이 있었던 것일까?

<모헨조다로>의 불가사의한 것으로 그 지방 사람들이 <유리가 되어버린 동네>라 부르며 접근하기를 꺼리는 곳으로 검은 유리질의 돌로 지면을 덮은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반경이 400미터 정도의 구역인데 아마도 모래나 벽돌이 2000도 이상의 초고열를 순간적으로 받은 결과 용해해서 유리상태로 고정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는 실로 통상의 50배라는 고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검은 유리 돌맹이와 불애녹은 병 

 

오늘 날 그와 같은 물질이 보이는 곳은 어느 특정한 장소 이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곳은 핵실험이 행해진 사막이다. 거기서는 굉장한 고열로 모래가 유리상태가 된 물질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소에서 몇 천 년 전에 핵폭발이 있었던 것일까?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다(Mahabharata)>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서사시 <마하바라다>에서

<영웅 <아스와다만>은 하늘을 나는 전차에 굳게 서서 수면에 내려서 신들마저 저항하기 힘든 <아구네아>의 무기를 발사했다.---화살이 비처럼 하늘에 날렸다. 그 화살 다발은 빛을 내며 흐르는 유성처럼 낙하하고 섬광이 되어서 적을 감쌌다. 돌연 어둠이 <가반다봐>의 군세를 덮었다. 그런 때문에 적은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무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구름이 하늘에 피어나고 피가 되어서 쏟아졌다

자연의 질서가 흐트러진 것 같다. 태양이 흔들린다. 우주는 불타고 이상한 열을 발했다.-- 물은 증발하고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은 타버렸다.--우레보다도 격렬하게 폭발한 이 무기에 저군의 전사들은 무서운 불에 타서 나무처럼 쓰러졌다. 이 무기에 탄 코끼리들은 모두 쓰러져서 절규한다. 불에 탄 다른 코끼리들은 공포에 미친듯이 날뛴다.--- 태양이 1만개가 모인 것 같이 밝은 연기와 불이 뒤섞여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미지의 무기, 쇠 화살, 죽음의 거대한 사자였다. 도시의 주민은 재로 화했다. 시체가 심하게 타서 분간할 수가 없다.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이 빠졌다. 침착함을 잃어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은 하얗게 되었다. 식료품은 독이 되고 말았다. 도망치는 군대의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자식이나 부모나 친구나 형제를 전차에 태우고 어떤 사람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물에서 몸이나 장비를 씻었다.-->

 

탈것에서 신들인 한 사람이 도시를 향하여 <아구네아>의 화살을 쏘는 대목이 있는데, 그 도시는 만개의 태양보다 엄청나게 빛나고 생물은 죽어서 절멸하고 재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마치 핵무기를 투하한 광경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들 서사시가 써질 무렵은 마침 모헨조다로는 문명의 절정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들 서사시나 전설이 의미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핵무기의 확산을 우려해야하는 현대 문명의 존망과 존재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