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십자군 시대의 정조대
<문>
십자군 시대에는 기사가 원정 갈 때, 부인의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금으로 만든 정조대를 차게 하고 잠을 쇠를 채웠다. 만일 정조대 열쇠를 가진 기사가 전사했다면 그 미망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답>
열쇠를 만드는 기술자가 있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풀 수 있었다.
정조대가 유행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여러 사람의 열쇠 만드는 기술자가 생겼다. 정조대를 차게 된 부인이나 정부는 즉시 기술자를 찾아가서 열쇠를 만들어 정조대를 풀어버렸다. 기술자를 타인에게 알선해주는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정조대는 금속성 밴드인데 주산지의 하나는 북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의 벨가모였다. 이곳은 옛날부터 금속공업의 전통을 가진 도시였다. 정조대를 만든 기술자가 직접 열쇠를 만들어 파는 경우도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십자군과 함께 역사에 많이 알려진 정조대이지만 실제는 원거리 상업으로 늘 집을 비우는 상인들이 가장 많이 정조대를 이용했다고 한다.
기사는 성에 대하여 개방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는 마음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어느 때의 십자군은 10만 명의 전사에 1만 3천 명의 창부를 동반할 정도였다. 이와는 반대로 상인은 여성에 대한 소유관념이 발달해 있는 데다 사회적인 지위나 권리가 아직 확고하게 인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조대로 소유권을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출처=요시오카 쓰도무 저 <세계사 여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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