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삼고의 예
1, 삼고초려(三顧草廬)
유표(劉表)가 다스리던 당시에는 드물게도 전쟁이 적은 평화시대였다. 유표는 난세에 국외 중립의 입장을 유지하여 많은 학자를 불러들이고 학문을 진흥시켰다.
20년 이상이나 전쟁으로 날이 지고 새던 유비(劉備)는 용병대장으로서 조조에 대한 최전선에 배속되었지만 아무런 전쟁이 없으니까 지루한 나날을 보냈다.
지루한 나머지 학자들과 교재를 하던 중 여러 가지로 배우는 점이 많았다. 항상 피로 물든 나날을 보내던 자신의 인생을 깊이 되새기고 고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비는 친히 교제하고 있던 사마휘(司馬徽)나 서서(徐庶) 등의 학자로부터 제갈공명이라는 별난 서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자신의 인생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유비는 스스로 공명이 사는 초막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공명은 집에 없었다. 공명은 좀처럼 집에 붙어있지 않아서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공명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시국에 대한 예리한 지적을 받게 되었다.
이때 공명이 제안은 <천허삼분(天下三分)의 계>였다.
<조조는 지금은 북방 중원을 제압하는 대 세력으로 곧 제거하기는 어렵다. 또 동방의 장강 하류역은 손권이 다스리고 있는데 그는 인재를 대우하는 영웅인데다가 이미 3대에 걸쳐서 통치를 하였으므로 백성도 따르고 있어서 오히려 동지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 형주와 서방의 익주(益州/四川省)는 지형의 이를 얻은 풍요로운 지역인데도 나약한 군주가 다스리고 있어서 민심도 동요하고 있다.
유장군은 형주와 익주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조조와 손권과 대항할 수 있는 태세를 정비하여 천하를 관망하고 북방에 난리가 나거든 한 장군에 명하여 형주로부터 낙양을 공격하여 장군 스스로 익주에서 장안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일은 저절로 정돈 될 것이다.>
이 구상은 유비를 조조와 손권과 함께 제3세력으로 자리매김하여 먼저 천하를 삼 분할한다. 그런 후 다른 세력을 타도하여 천하를 평정하려고 하는 이 단계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것은 실로 웅대한 장기 전략구상이다. 지금까지 일개의 용병대장으로 활동해온 유비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 스스로가 군주권을 확립하여 천하를 평정하려고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유비는 47세에 처음으로 <용병대장>이외의 자신의 진로를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유비는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한왕조의 혈족이라고 자리매김하여 한왕실 부흥의 대의명분을 내걸고 이것을 유일무비의 정치목표로 하여 조조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그 곁에는 항상 제갈공명이 있었다. 소위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이다.
2, 천하삼분의 계
유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 사람의 서생에 지나지 않았던 공명이 어떻게 해서 <천하삼분의 계>를 구상하게 되었는가?
실은 이것은 공명의 창안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당시 중국 남부의 유능한 사대부들은 정도의 차는 있어도 중국남부를 조조의 세력인 북부와 대치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사>에 따르면 처음에 이 생각을 한 사람은 손권 휘하의 노숙(魯肅)이다. 그는 친구인 주유(周瑜)의 추천으로 손권(孫權)을 섬겼는데 처음 군주로서 대할 때에 <천하이분의 계>를 제기했던 것이다.
<조조는 강대하여 곧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장강 중하류역을 지배하여 천연의 방벽을 무기삼아 북방과 대치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북방이 피곤함을 느낄 때에 남방의 군세를 북방으로 향하게 하여 이를 한꺼번에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합시다.>
손권은 이 대전략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노숙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단지 노숙은 중국남부 전체를 손권(孫權)이 차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는 신뢰할만한 동맹에게 맡겨두고 그 동맹자와 힘을 합쳐서 조조와 대결하자고 생각했다. 이것은 공명의 <천하삼분의 계>와 완전히 이해가 일치하는 구상이다.
공명은 노숙의 구상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공명의 친형 제갈근(諸葛瑾)(손권을 섬기고 있었다)은 노숙의 친구였다. 제갈 형제는 매우 사이가 좋아서 자주 편지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러니 공명이 노숙의 전략을 알고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천하삼분의 계>는 공명이 책상 위에서의 공론은 아니었다. 남방의 사대부들의 지혜가 결집하여 실현 가능성이 높은 국가전략이었다.
공명은 이윽고 노숙과 손을 잡고 이 전략의 실현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체가 된 것은 노숙이다. 유비와 공명은 노숙의 행동을 노려보며 교묘히 진퇴를 정해갔다.
그런데 <천하삼분의 계>를 생각한 것은 노숙과 공명만이 아니었다. 손오의 사대부들은 여러 가지의 <삼분의 계>를 입안하고 있었다.
1)노숙과 공명설
손권은 양주(장강하류)를 영유하고 형주와 익주는 믿을 만 한 동맹자(劉備)가 영유한다. 그리고 양자가 힘을 합하여 조조와 대항한다.
2) 주유(周瑜)의 설
손권은 양주만이 아니라 형주나 익주도 영유해야 한다. 동맹자는 필요 없다. 곧 이것은 <천하 이분의 계>이다.
3) 여몽(呂蒙)의 설
손권은 양주, 형주를 영유하고 익주는 동맹자(劉備)에게 맡긴다. 이것은 1)과 2)의 절충설이다.
이들 의론은 요컨대 손권의 실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의 차이이다. 결과적으로 1)은 손권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이고 2)는 과대평가한 것이다. 결국 천하의 형세가 3)으로 낙착된 것은 이 설이 가장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손권의 정권 내부에서는 처음에는 1)과 2)가 격하게 대립하지만 주유가 죽은 때문에 1)로 낙착된다. 유비와 공명의 진격은 이 정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노숙이 병몰한 후 3)이 급격히 부상하여 그 결과 유비는 관우(關羽), 장비(張飛)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비정권은 손권의 이해에 따라 바뀌는 취약한 존재였는지 모른다.
'인물 전기 > 제갈공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7화 촉한의 암운(2) (0) | 2020.06.23 |
---|---|
제 7화 촉한의 암운(1) (0) | 2020.06.22 |
제6화 유비의 맹반격 (0) | 2020.06.21 |
제5화 유비의 대약진 (0) | 2020.06.20 |
제4화 제갈공명의 하는 일 (0) | 2020.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