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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 전설/소설 길가메시서사시

제2장 엔기두의 출현

간천(澗泉) naganchun 2017. 6. 4. 05:49



2장 엔기두의 출현


우루쿠 국민의 진지한 기도는 절대신인 아누의 마음에 닿았다. 절대신 아누는 창조의 신 아루루라 불렀다. <아루루여 너는 신들과 비슷하여 길가메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들의 기대를 배신하였다. 너는 잘 들어라. 저 우루쿠의 백성의 탄식을.> 그렇게 말하자 절대신 아누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창조의 신 아루루는 귀를 기울여서 우루쿠 백성의 소리를 들었다. 창조의 여신인 아루루의 마음에 깊이 후회하는 마음이 남았다. 다시 눈을 들어서 절대신 아누는 말을 이었다. <아루루여 이번에는 길가메시와 비슷해서 그와 싸울 용기를 가진 자를 만들어라. 길가메시를 쓰러뜨릴 힘을 가진 자를 만들어라. 그리고 길가메시와 싸우게 하라. 우루쿠 백성에게 평화가 돌아오도록 길가메시를 멸망시킬 자를 만들어라.> 절대신 아누는 창조의 여신 아루루에게 그리 명하였다. 창조의 여신 아루루는 마음속에 거칠게 날뛰는 길가메시의 모습을 이미지하여 그 모습을 본 따서 모양내기로 하였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로 손을 깨끗이 한 아루루는 찰흙을 빚어서 그것을 지상에 던졌다. 지상에 떨어진 찰흙은 덩어리가 되고 싸움의 신인 니누루다에게서 힘을 얻은 씩씩한 남자 엔기두가 출현하였다. 엔기두의 전신은 굳센 털로 덥히고 머리는 곡물의 여신 니사바의 머리처럼 파도치고 있었다. 마치 여성과 같은 장발 머리였다. 가축의 신 스무강처럼 짐승의 옷을 입고 인간도 태어난 나라도 모른다. 무서운 반수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찰흙에서 태어난 엔기두는 산 속에서 야수 같은 생활을 시작하였다. 노루들과 함께 풀을 먹고 맹수들과 함께 물을 마셨다. 엔기두는 산을 지배하고 인간이 걸어놓은 덫으로부터 짐승들을 지키고 짐승들의 지배자가 되었다. 자연 속에서 사는 생활은 엔기두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어느 날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짐승들의 물을 마시는 장소에서 짐승들과 함께 밀치며 물을 마시는 엔기두의 앞에 우연히 한 사람의 사냥꾼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사냥꾼은 짐승을 잡기 위하여 걸어 놓은 덫이 모두가 부서져 있음을 보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하여 산을 방황하고 짐승들의 물 마시는 장소에까지 온 것이다. 사냥꾼과 엔기두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사냥꾼은 무서움에 떨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무서움이 사냥꾼의 전신을 지배하여 비명을 지를 수마저 없었다. 그런 사냥꾼을 한 눈에 본 엔기두는 짐승들과 함께 유유히 사냥꾼 앞을 지나갔다. 살았다고 생각했을 때 사냥꾼의 전신은 간신히 움직일 수가 있었다. 사냥꾼은 숲속에 서 크게 비명을 질러 한숨에 집으로 달려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얼마의 시간이 걸린 것일까 집의 등불이 보였을 때 처음으로 사냥꾼은 공포에서 해방되려 하고 있었다. 사냥꾼은 거칠게 집 문을 두들겼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사냥꾼은 쓰러질 듯이 제 몸을 아버지에게로 내맡겼다. 사냥꾼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놀란 아버지는 사냥꾼을 안으면서 난로의 곁에 있던 의자에 앉혔다. 사냥꾼의 얼굴은 새파랗고 입술은 마르고 하얗게 변했다. 마치 아득히 먼 곳에서 돌아온 여행자와 같았다. 부엌 구석에 있던 병에서 맥주를 그릇에 부은 아버지는 그것을 사냥꾼에게 넘겨 마시게 하였다. 사냥꾼은 그릇을 두 손으로 싸잡고 한 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버지가 비로소 말을 했다. <어떻게 된 거냐. 무슨 일이 있었나?> 아직도 초점이 맞지 않은 눈으로 사냥꾼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산 속의 짐승들이 물을 마시는 장소에서 야수와 같은 모습을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남자는 짐승들과 물 마시는 장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그리 말하고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사냥꾼은 흥분한 얼굴로 앞에서 겪은 체험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 남자는 내가 걸어둔 덫을 모두 부수어버렸습니다. 남자의 눈은 야수처럼 빛나고 그 힘은 국내에서 제일가는 용자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남자입니다. 위험한 남자입니다.> 침착한 마음과 지혜를 지닌 아버지는 사냥꾼의 말을 듣자 입을 열었다. <아들아, 잘 들어라. 우루쿠의 성에는 길가메시님이 계시다. 이 나라의 왕으로 게다가 절대신 아누처럼 왕은 강하다. 너는 지금으로부터 곧 우루쿠 성에 가서 이 일을 길가메시왕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아직도 겁에 질린 사냥꾼의 팔을 잡고 의자에서 일으켜 현관으로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