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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전기가 나갔다

간천(澗泉) naganchun 2018. 5. 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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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나갔다




생각해 보라.

전기가 나갔다.


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친 사람들은 전기가 나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 전을 겪은 사람들도다.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전기가 나가는 일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공기처럼 전기는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인해서 전기가 멈추는 일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천재지변이나 외계로부터의 침공 등으로 파괴되는 지구의 모습을 흔히 접하기 때문에 가상으로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불편을 겪는 일은 과연...


그러나 전기가 나갔다.

예전에는 밥을 먹다가 혹은 뭔가를 하다가 잠시 스톱을 하다가도 ‘밥은 먹어진다’라면서 잠시 너털 웃음꽃을 피우고 말 일이었다. 초를 찾아서 촛불을 켜고 있노라면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그 때는 ‘전기가 나갔다’라는 것을 ‘불이 나갔다’라고도 말했다. 조금 기다리다보면 의례 다시 전기가 들어와서 일상이 연결 되었다.

전기가 나갔다.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전기가 나가서 예측도 할 수 없다. 전기가 들어 올 가능성을 알아 볼 계측기계를 돌릴 전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만, 혹은 우리 동네만 나갔나 하고 생각하지만 지구 전체가 어떤 이유도 없이 전기가 나간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고층에 살던, 항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시던 노인들은 아마도 계단 중간 어디쯤에서 한참을 쉬었다 가야 할 것이다. 수도도 끊긴다. 댐이나 수원의 발전기를 돌리기 못해서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거나 정화하지 못하거나 물을 흘려보내는 장치가 돌아가지 않아서이다. 마트의 생수는 언젠가 동이 날 것이고 사람들은 마실 물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도 밧데리가 남아 있는 동안은 문제없겠지만 충전하지 못해서 이내 멈추고 만다. 누구와 무엇과 연결을 한단 말인가. 서버 자체가 정지가 될 텐데. 아무하고도 연락을 할 수 없고 아무런 액션도 취할 수 없게 된다. 소식도 끊긴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모두 아웃이다. 그러니 언제 전기가 들어오는지, 왜 나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기대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된다.

태양광이나 기타 대체 연료가 있다지만 그것들을 바로 전기처럼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시도할 기관 자체가 스톱이 될 것이므로.


은행에서 돈도 인출할 수 없다. 지금 수중에 가지고 있는 현금의 액수가 생명유지 기간이 될 수도 있다. 마트에서는 카드결재가 되지 않게 되어 현금으로만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판이나 태양광 계산기로 두드리느라고 긴 줄을 서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돈도 바닥이 난다.


그러면 물물교환으로 가게 될 것이다. 먹는 것과 관계가 없는 물건들은 물물교환 대상에서 제외가 될 것이다.

가스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가스도 나오지 않는다. 부탄가스가 있다면 당분간은 사용하겠지만 그것마저 다하게 된다. 양초로 밥을 지을 수도 없다. 모든 가전제품 사용이 안 된다.


사무실은 모든 파일이 컴퓨터 안에 저장이 되어 있을 것이므로 업무도 올 스톱이 되며 모든 것이 멈추게 된다. 일을 안 해도 되지만 과연...


이제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된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도시를 떠난다. 시골에도 전기가 나가겠지만 전기 의존도는 도시보다는 덜 하다.

밭이나 강이나 바다에서 수렵을 할 수 있다. 당분간은 그렇게 직접 잡아서 직접 길러서 식량을 해결해야 한다.

자전거를 이용하고 걷거나 해야 한다. 길을 찾기 위해서 지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 자동차에 한 권씩은 반드시 비치되어 있던 ‘전국도로지도’ 같은 것 말이다.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으면 안 되는 풀이나 식물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겠다. 식재료를 장기간 전기냉장고에 두지 않고도 저장하거나 보존하면서 먹고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염장이나 훈제, 건조시키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숙지를 해두면 좋을 것이다.

산에서 이슬을 채취하여 식수로 사용하는 방법도 물론이다.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모두가 당연했던 방법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필수 지침이 된다.


그리고 그런 갑갑하고 황당하고 힘든 상황을 견디어 나갈 인내와 서로를 보듬는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영영 이제 다시는 전기가 돌아오지 않아 원시인처럼 살아가야 한다 해도 그것을 즐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필름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 필름만 장착되어 있다면 그 어려운 시기를 포착해 두었다가 나중에 인화해서 기록으로 남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가 완전 항복하고 말 ‘언플러그드 (전기 콘센트를 꼽지 않은)’ 세상이 어쩌면  살만한 세상인지도...